역사적 인물

앵길베르(Angilbert, 745~814) – 샤를마뉴 대제의 측근이자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주역

앵길베르(Angilbert, 745~814) – 샤를마뉴 대제의 측근이자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주역

샤를마뉴 대제의 측근이자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기둥

앵길베르(745~814)는 프랑크 왕국의 황제 샤를마뉴 대제를 섬긴 정치가이자 시인으로, 알쿠인과 함께 샤를마뉴 치세에 꽃핀 문화 부흥 운동, 이른바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양대 축을 이룬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 궁정 학교에서 알쿠인의 지도를 받으며 폭넓은 학식을 쌓았고, 특히 뛰어난 시재(詩才)를 인정받아 궁정 사람들로부터 고대 그리스의 대시인의 이름을 딴 '호메로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정치가·외교관으로서의 활약

앵길베르는 학자에 머무르지 않고 샤를마뉴의 깊은 신뢰를 얻는 비서이자 외교관으로 성장했다. 그는 롬바르드 원정과 작센 전쟁 등 여러 전역에 군주를 따라 출정했으며, 교황 레오 3세와의 협상 임무를 맡는 등 제국의 외교 전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790년경에는 북프랑스의 상 리키에 수도원 원장(아빠트)으로 임명되어 수도원 개혁을 주도했고, 그곳을 도서와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황실 가문과의 비밀 혼인

사생활 면에서도 앵길베르는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카롤링거 왕조의 황제 샤를마뉴의 딸 베르타와 비밀리에 혼인 관계를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왕녀의 혼인은 정치적으로 극히 민감한 문제였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한동안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 사이에서는 훗날 저명한 역사가가 된 니타르를 비롯한 자녀들이 태어났다.

만년과 유산

814년 1월 샤를마뉴 대제가 선종하자 앵길베르는 세속의 영달을 뒤로하고 상 리키에 수도원으로 은퇴했으나, 같은 해 2월 18일 주군을 따라가듯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성 바울로의 회심』 등 종교 시와 샤를마뉴와 교황의 회담을 노래한 장편 시를 남겼으며, 그의 문학적 업적은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