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아르마냐크의 베르나르 7세(1360~1418): 아르마냐크파를 이끈 프랑스 대섭정

아르마냐크 백작이 되다

베르나르 7세(Bernard VII d'Armagnac, 1360~1418)는 1391년 형 장 3세(Jean III)가 사망하자 아르마냐크 백작위를 계승하며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는 남프랑스의 강대한 영주로서 점차 파리의 프랑스 왕실 궁정에서 영향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오를레앙 공작과의 동맹

당시 오를레앙 공작 루이(Louis d'Orléans)는 이탈리아 밀라노 방면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베르나르는 밀라노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과 결부된 이해관계 속에서 루이와 긴밀히 협력하게 됩니다. 두 세력은 정치적 이익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한 진영으로 묶였습니다.

1407년 루이 드 오를레앙이 부르고뉴 공작 장 무두살용(Jean sans Peur)의 사주를 받은 자들에게 암살되자, 베르나르는 오를레앙파에 대한 충성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1410년에는 자신의 딸 보느 다르마냐크(Bonne d'Armagnac)를 살해된 공작의 아들이자 새 오를레앙 공작인 샤를(Charles d'Orléans)에게 시집보내며 두 가문의 관계를 혼인으로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반(反)부르고뉴파의 지도자

암살된 오를레앙 공작의 장인이 된 베르나르 다르마냐크는 1410년부터 부르고뉴 공작에 적대하는 세력의 실질적 지도자로 부상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오를레앙파는 '아르마냐크파(Armagnacs)'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는 프랑스 내전 시기 양대 진영 구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는 각 지방과 파리에서 부르고뉴파 및 1413년의 카보시안(Cabochian) 운동, 즉 카보슈 반란을 강경하게 진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자비할 정도로 철저한 통제와 보복을 감행했으며, 이러한 강경책은 그에게 '카보슈 학살자'라는 별명까지 안겨 주었습니다.

프랑스 대원수(콩스타블)와 최후

1415년, 백년전쟁의 격랑 속에서 베르나르는 프랑스 콩스타블(Constable of France, 대원수)에 임명되어 왕국군의 최고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왕세자(도팽) 샤를의 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며 국정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1418년 부르고뉴파가 파리를 함락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도시를 장악한 부르고뉴파에 의해 베르나르 다르마냐크는 체포된 끝에 참혹하게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아르마냐크파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왕세자 샤를은 그의 정치적 유산 위에서 훗날 샤를 7세로 즉위하여 전쟁을 마무리짓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