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혁명기의 확고한 왕당파 장군
프랑수아 클로드 아무르 드 부이 후작(Marquis de Bouillé, 1739~1800)은 프랑스의 장군이자 철저한 왕정주의자였다. 그는 군인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동부 방면군 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이 격화되던 시기에도 끝까지 루이 16세에게 충성을 맹세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낸시 주둔 스위스 연대 반란의 강경 진압
1790년 8월, 낸시(Nancy)에 주둔하던 스위스 용병 연대가 급료 미지급과 혁명 정국 속 처우 문제를 들어 반란을 일으켰다. 부이는 이른바 '낸시 반란'을 무력으로 강경하게 진압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병사들이 희생되었지만, 그의 결단력은 왕실과 보수 세력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계기가 되었다.
바렌느 도주 사건과 좌절
부이는 이후 국왕 일가가 프랑스를 탈출하여 해외로 망명할 수 있도록 돕는 비밀 작전을 총괄했다. 그러나 1791년 6월 벌어진 유명한 '바렌느 도주 사건(Varennes)'에서 국왕 일가는 바렌느 마을에서 신분이 발각되어 붙잡히고 말았다. 계획 자체는 거의 성공 직전까지 이르렀으나, 극적인 실패는 왕권에 치명타를 입혔고 부이 역시 파리 시민들의 분노 대상이 되었다.
망명 생활과 말년
이 사건의 여파로 부이는 1791년 프랑스를 떠나 망명길에 올랐다. 망명 중인 그는 프랑스 혁명군에 맞서 싸우는 외국 연합군에 합류하여, 영국군 사령관 요크 공작(Duke of York) 휘하에서 프랑스군과 교전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1800년 망명지 런던에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