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트 크레송(Édith Cresson, 1934년생)은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1991년 5월 15일부터 1992년 4월 2일까지 프랑스 정부 수반을 맡았으며, 프랑스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입니다.
어린 시절과 학업
에디트 캄피옹(Campion)은 좌파 성향의 재정 감독관 가브리엘 캄피옹의 딸로, 1934년 1월 27일 불로뉴빌랑쿠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여성 고등상업학교(HEC-JF)에서 학위를 취득했고, 인구학 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이러한 학업 배경을 바탕으로 경제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1959년에는 푸조 수출 부장 자크 크레송(Jacques Cresson)과 결혼하여 슬하에 두 딸을 두었습니다.
정계 입문과 초기 경력
1965년, 에디트는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의 첫 대선 캠페인에 참여하며 정치에 발을 들였습니다. 1971년 사회당(PS)에 입당했고, 1974년에는 당 서기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지도위원회 위원으로서 청소년과 학생 담당 업무를 맡았습니다. 1977년에는 튀레(Thuré) 시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78년 주의원 선거와 총선에서 장피에르 아블랭(Jean-Pierre Abelin)에게 패배했지만, 이후 1981년, 1986년, 1988년 선거에서 연달아 그를 꺾으며 설욕에 성공했습니다. 1979년에는 유럽 의회 의원으로도 선출되었습니다.
1981년, 에디트 크레송은 프랑스 최초의 여성 농무부 장관에 임명되었지만, 농업계에서는 여성이 이 직책에 오른 것 자체를 도발로 받아들이며 강한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1982년에는 비엔(Vienne) 주 평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83년에는 샤텔로(Châtellerault) 시장에 당선되어 두 직책 모두 여러 차례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같은 해 상무관광부 장관에 임명되었고, 1984년에는 산업재편통상부 장관을 맡았습니다.
총리 재임 시절
1988년 미테랑 대통령의 두 번째 당선 이후, 에디트 크레송은 유럽문제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989년 프랑스의 EEC(유럽경제공동체) 의장국 운영을 총괄했습니다. 그러나 미셸 로카르(Michel Rocard) 총리의 유럽 정책과의 불화로 1990년 사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1년 5월 15일, 미테랑 대통령은 그녀를 총리로 임명했고, 에디트 크레송은 프랑스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여성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취임 약 일주일 후 국민의회에서 진행된 시정연설에서 그녀는 실업률 감소, 지속 가능한 개발, 기회 균형 실현, 중동 평화, 무기 판매 제한 등을 임기의 핵심 우선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1992년에는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단일 통화와 유럽 시민권 도입을 골자로 하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또한 '이민 통제' 조치를 단행하며 사회당의 난민 허용 정책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피에르 베레고부아(Pierre Bérégovoy)와 리오넬 조스팽(Lionel Jospin) 등 주요 각료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낮은 지지율과 더불어 정치권과 언론계의 남성주의적 시선에 시달린 그녀는 결국 미테랑 대통령의 지지마저 잃었고, 1992년 4월 2일 피에르 베레고부아에게 총리직을 넘겨주며 물러났습니다.
총리 이후의 행보
1993년, 에디트 크레송은 재선에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1995년에는 미테랑 대통령의 임명으로 유럽 집행위원회 위원이 되어 과학, 연구 및 개발 분야를 담당했습니다. 1997년에는 리오넬 조스팽 총리로부터 공직 겸직 문제를 지적받아 시장직에서 물러났으며, 같은 해 암 진단을 받았지만 다행히 완치되었습니다.
2001년에는 제2차 기회학교 재단 회장직을 수행했습니다. 2006년에는 2007년 대선에서 세골렌 루아얄(Ségolène Royal)을 지지하겠다고 밝혔으며, 같은 해 유럽 사법재판소로부터 허위 고용 사건 관련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재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그녀는 '제2차 기회학교' 설립 사업에 여전히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