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루네하우트는 서고트 왕국의 왕족 출신으로, 오스트라시아의 왕 지게베르 1세와 결혼한 인물이다. 미모와 뛰어난 교양을 갖춘 그녀는 남편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자신의 자매를 살해한 네우스트리아의 왕 킬페리크 1세에 맞서 싸울 것을 설득했다.
남편의 죽음과 섭정의 시작
복수 전쟁은 한때 오스트라시아에 유리하게 흘러갔지만, 지게베르 1세는 암살당하고 만다. 브루네하우트는 어린 아들 힐데베르 2세를 데리고 오스트라시아로 물러났고, 아들을 새 왕으로 옹립한 뒤 스스로 섭정 역할을 맡아 나라를 다스렸다.
그녀는 킬페리크의 아들과 재혼하기도 했는데, 이 소식을 접한 킬페리크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고 전해진다. 결혼이 깨진 뒤 브루네하우트는 다시 오스트라시아로 돌아와 힐데베르 2세와 함께 통치에 나섰다.
프레데군드와의 평생 숙명의 대결
네우스트리아와 오스트라시아 사이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브루네하우트는 평생의 숙적인 프레데군드와 격돌하며 두 왕국의 대립을 주도했다. 탁월한 정치 감각과 통치 능력을 지닌 그녀는 손자인 테오드베르 2세와 티에리 2세의 이름으로 국정을 운영했으며, 두 손자에게 네우스트리아 공격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그러나 클로타르 2세가 다스리는 네우스트리아와 강화를 맺은 테오드베르 2세와는 극심한 갈등을 빚었고, 결국 그를 죽음에 몰아넣었다.
말 꼬리에 묶인 참혹한 최후
두 손자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도 브루네하우트는 여전히 오스트라시아의 실권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궁재 피핀 드 랑덴과의 충돌로 입지가 크게 흔들렸고, 마침내 클로타르 2세에게 포로로 잡히고 만다.
무려 80세의 고령이었던 그녀는 혹독한 고문을 견딘 끝에 말 꼬리에 묶여 끌려가는 참혹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다. 왕비에서 섭정으로, 권력의 정점에서 비극의 최후까지 — 브루네하우트의 일대기는 프랑크 왕국 초기 권력 다툼의 극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