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왕 샤를 3세(Charles III le Simple)는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으로, 왕위에 올랐다가 봉건 귀족들의 반란으로 몰락하여 유폐 속에서 생을 마감한 비극의 인물입니다.
출생과 '단순왕'이라는 별명의 의미
샤를 3세는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 루이 2세 '말더듬이(le Bègue)'와 아델라이드 드 프리울 사이에서 태어난 유복자였습니다. 그의 별명인 '단순(le Simple)'은 흔히 오해하듯 어리석다는 뜻이 아니라, 솔직하고 순수하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왕위 계승의 좌절과 두 번의 대관
형들이 사망했을 당시 샤를은 나이가 너무 어려 왕위를 계승하기 어려웠고, 결국 신성로마황제 카를 3세 '뚱보(le Gros)'에게 왕관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후 카를 3세가 폐위되자 왕국의 귀족들은 파리 백작 외드 1세를 새로운 프랑스 국왕으로 선출했습니다.
893년 1월 28일, 샤를은 랭스에서 프랑스 국왕으로 대관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통치는 외드가 사망한 이후에야 가능했으며, 898년 다시 한번 프랑스 국왕으로 대관되었습니다.
생클레르쉬르프트 조약과 노르망디 공국의 탄생
911년, 샤를 3세는 바이킹 지도자 롤로(Rollo)와 생클레르쉬르프트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노르망디 지역은 노르만인들에게 주어진 공국이 되었고, 오랫동안 왕국을 괴롭혀 온 바이킹 침략 문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노르망디 공국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봉건 귀족의 도전과 몰락
그러나 샤를은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가던 봉건 가문들, 특히 부르고뉴의 라울과 프랑스의 로베르 같은 강대한 귀족들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923년 수아송 전투에서 로베르 1세에게 패배하면서 왕위를 잃었고, 부르고뉴의 라울이 새로운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패배한 샤를은 자신의 가신인 베르망두아 백작 에르베르에게 피신했으나, 오히려 그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탑에 유폐된 채 6년간의 갇힌 나날을 보내다가 929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관련 인물: 외드(카페 가문, 프랑크 왕) · 로베르 1세(카페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