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4세 르 벨: 직계 카페 왕조의 마지막 국왕
샤를 4세 르 벨(Charles IV le Bel, 1295~1328)은 흔히 '직계 카페 왕조'라 불리는 카페 왕조 본가의 마지막 프랑스 국왕이다. 그는 아버지 필리프 4세 르 벨(Philippe IV le Bel)로부터 프랑스 왕위를, 어머니 잔 1세 드 나바르(Jeanne Ire de Navarre)로부터 나바르 왕위를 동시에 계승하여 두 왕국을 함께 다스렸다.
세 번의 결혼과 끝내 해결되지 않은 후계 문제
1307년 샤를은 부르고뉴 가문의 블랑슈 드 부르고뉴(Blanche de Bourgogne)와 결혼했다. 그러나 1315년 블랑슈는 간통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감옥에 갇히면서 이 결혼은 사실상 파탄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당시 프랑스 왕실을 뒤흔든 유명한 스캔들로, 샤를의 형수들도 같은 혐의에 연루되어 왕가의 명예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후 샤를은 룩셈부르크의 마리(Marie de Luxembourg)와 재혼했으나 짧은 시일 만에 아내를 잃었고, 세 번째로는 마리의 사촌인 에브뢰의 잔(Jeanne d'Évreux)과 결혼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 번의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는 모두 딸이었을 뿐, 왕위를 물려줄 아들은 없었다.
왕조의 교체 – 발루아 왕조의 시작
1328년 샤를 4세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에서 오랜 전통으로 지켜져 온 남계 상속 원칙에 따라 왕위는 그의 육촌인 발루아 백작 필리프에게 돌아갔다. 그가 바로 새 국왕 필리프 6세 드 발루아(Philippe VI de Valois)이며, 이로써 프랑스 역사는 카페 왕조 직계의 종언과 함께 발루아 왕조라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한편 샤를 4세의 죽음은 단순한 왕조 교체를 넘어 유럽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와 발루아 왕조 간의 갈등은 훗날 백년전쟁이라는 거대한 분쟁으로 번지며 중세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