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화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화가

메리 스티븐슨 카사트(Mary Stevenson Cassatt)(1844~1926), 흔히 메리 카사트로 불리는 그녀는 미국 출신의 화가입니다.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지만, 엄밀히 말하면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t) 세대에 속하는 작가입니다. 그녀는 특히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섬세한 작품들로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시작된 유년기와 미술 교육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화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메리 카사트는 1844년 5월 2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러게니시티(Allegheny City)에서 캐서린 켈소 존스턴과 로버트 심슨 카사트 부부의 넷째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가문은 17세기에 미국으로 이주한 프랑스 이민자 '코사르(Cossart)' 가문의 후손으로, 덕분에 메리는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1851년, 일곱 살이던 메리를 포함한 카사트 가족은 자녀들에게 유럽식 교육과 생활 방식을 접하게 하기 위해 미국을 떠나 프랑스와 독일로 이주했습니다. 이 시기에 메리는 프랑스어, 독일어, 드로잉, 음악을 배웠고, 미술관과 전시회를 두루 찾아다니며 앵그르, 들라크루아, 쿠르베 등 대가들의 작품을 접했습니다. 1855년에는 남동생 로비가 골육종으로 세상을 떠났고, 가족은 펜실베이니아로 돌아왔습니다. 메리는 다시 드로잉 수업을 이어가며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파리 살롱 데뷔, 그리고 드가와의 운명적 만남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메리는 1860년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교육 과정에 대한 실망과 교수·학생들의 가부장적인 태도에 지쳐 2년 만에 학업을 접었습니다. 1866년에는 어머니와 동문 엘리자 홀드먼과 함께 파리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여성은 파리 국립 미술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 그녀는 장레옹 제롬(Jean-Léon Gérôme)이라는 거장의 문하에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1868년, 그녀의 작품 <만돌린 연주자>(The Mandolin Player)가 파리 살롱에 입선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런던, 토리노, 파르마, 안트베르펀 등지를 여행하며 기량을 연마했고, 파리 살롱 역시 꾸준히 그녀의 작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1875년, 파리 살롱이 그녀의 작품 한 점을 거부하면서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같은 해 메리는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를 만났고, 1877년 살롱이 또다시 그녀의 작품을 거부하자 드가는 인상주의 살롱(Salon des Impressionnistes)에 출품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1879년 그녀는 <진주 목걸이를 한 화실의 리디아>(Lydia in a Dressing Room Wearing a Pearl Necklace)를 출품했고, 인상주의 동료들 속에서 즉각적인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꼈습니다. 이 무렵부터 드가, 피사로, 베르트 모리조 등과 깊은 교류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와 아이'를 담은 대표 연작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화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1882년, 메리 카사트의 언니 리디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를 계기로 그녀는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초상화 연작을 시작했습니다. 이 주제는 이후 그녀의 가장 대표적인 소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1890년에는 일본 판화 전시회를 관람했는데, 이 경험은 그녀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었고 예술 세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후 그녀는 판화와 에칭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몰두했습니다.

1892년에는 시카고 만국 박람회 여성관을 위한 벽화를 그렸으며, 1904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Légion d'honneur)을 받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투쟁의 말년과 남겨진 유산

1891년 아버지, 1895년 어머니, 그리고 1911년에는 남동생 가드너를 잇달아 잃으면서 메리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1914년에는 당뇨병과 백내장으로 시력이 크게 나빠져 결국 붓을 영원히 내려놓았고, 1921년에는 완전히 실명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메리 카사트는 1926년 6월 1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극적인 말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남긴 모자상 연작과 섬세한 판화들은 오늘날까지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