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현자 샤를 5세(1338~1380): 백년전쟁의 위기를 넘은 발루아 왕조의 명군

현자 샤를 5세(1338~1380): 백년전쟁의 위기를 넘은 발루아 왕조의 명군

현자 샤를 5세(1338~1380): 백년전쟁의 위기를 넘은 발루아 왕조의 명군

발루아 분가의 세 번째 왕인 샤를 5세(Charles V le Sage)는 '선왕'이라 불린 장 2세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도피네(Dauphiné) 지방을 손에 넣게 되면서, 그는 '도팽(Dauphin)'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최초의 프랑스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푸아티에의 비보와 어린 섭정

1356년 백년전쟁 중 푸아티에 전투에서 아버지 장 2세가 잉글랜드군의 포로로 잡히는 비운을 맞자, 어린 나이의 샤를은 갑작스럽게 왕국의 섭정을 맡아야 했다. 막대한 몸값 마련을 위한 세금 부담은 백성들의 원망을 사기 충분했고, 1358년에는 파리 상인 단장 에티엔 마르셀(Étienne Marcel)이 반기를 들었다. 마르셀의 반란으로 샤를은 파리에서 피신할 수밖에 없었으며, 마르셀이 살해된 뒤에야 수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코셰렐 대승과 왕국 재건

1364년, 베르트랑 뒤 게클랭(Bertrand Du Guesclin)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은 코셰렐(Cocherel) 전투에서 나바라 왕 '악인' 카를로스 2세와 그의 잉글랜드 동맹군을 격파하는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해 아버지 장 2세가 서거하자 샤를은 프랑스의 정식 국왕으로 즉위했다.

즉위 후 샤를 5세는 흔들리던 왕권을 바로잡고 수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추진했다. 열렬한 예술 후원자이기도 했던 그는 1367년 루브르 성을 재건축하여 웅장한 왕의 거처로 새롭게 단장했으며, 프랑스 최초의 왕립 도서관을 설립해 학문과 문화 진흥에도 힘을 보탰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프랑스는 백년전쟁 초기의 열세를 만회하며 잃었던 영토를 되찾았고, 이러한 현명한 통치 덕분에 그는 '현자(le Sage)'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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