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이자 모델로서 경이로운 장수 경력을 쌓은 시슬리 타이슨(1924~2021)은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연기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의 대표성 확대에 기여한 공로로 널리 기억되고 있다.
할렘에서 보낸 어린 시절

시슬리 타이슨은 1924년 12월 19일 미국 뉴욕 할렘에서 태어났다. 가정부였던 프레더리카 허긴스(Fredericka Huggins)와 목수였던 윌리엄 어거스틴 타이슨(William Augustine Tyson) 사이의 세 자녀 중 한 명으로, 부모는 모두 카리브해 출신으로 미국에 막 이주해 온 이들이었다. 부모는 그녀가 열한 살 때 헤어졌고, 시슬리는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시슬리는 매우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특히 어머니는 딸이 영화관에 가는 것과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고, 훗날 딸이 배우의 길을 택하자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어 했다. 시슬리는 성공회 교회를 다니며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열일곱 살에 딸을 낳았고, 이듬해 케네스 프랭클린(Kenneth Franklin)과 결혼했지만 짧은 결혼 생활 끝에 남편은 18개월 만에 그녀 곁을 떠났다.
연예계 데뷔
시슬리는 모델 일을 시작해 빠르게 성공을 거두었으며, 잡지 에보니(Ebony)와 보그(Vogue)에도 등장했다. 1951년, 27세의 나이에 NBC 드라마 프론티어스 오브 페이스(Frontiers of Faith)를 통해 첫 배역을 맡으며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연기를 두고 어머니는 딸을 집에서 내쫓았고, 2년간 말을 섞지 않았다. 어머니는 무대에 오른 딸을 직접 본 후에야 마음을 돌린 것으로 전해진다.
1956년 영화 카리브 골드(Carib Gold)로 첫 영화 출연을 이루었다. 이후 영화에서 단역을 간헐적으로 맡았고, 1958년부터는 할렘에서 무대 활동을 시작해 첫 작품 다크 오브 더 문(Dark of the Moon)에 출연했다. 1961년에는 장 주네(Jean Genet)의 희곡 흑인들(The Blacks)에서 스테파니 역을 맡아 마야 안젤루(Maya Angelou), 제임스 얼 존스(James Earl Jones) 등과 함께 호평을 받았다. 이후 또 다른 희곡 문 온 어 레인보우 숄(Moon on a Rainbow Shawl)에서의 연기로 상을 받았다.
이후 시슬리는 연극, 영화, 텔레비전을 넘나들며 활동 폭을 넓혔다. CBS 드라마 이스트 사이드/웨스트 사이드(East Side/West Side)에서 사회복지사의 비서 역을 맡았는데, 이 드라마는 사회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작품이었다. 당시 그녀는 정규 역할을 맡은 유일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배우였다.
첫 주연 배역

1972년, 시슬리 타이슨은 영화 사운더(Sounder)에서 루이지애나 소작농의 아내 리베카 모건(Rebecca Morgan) 역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이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2017년 엘르(Elle)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시켜 준 작품"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TV 영화 제인 피트먼의 자서전(The Autobiography of Miss Jane Pittman)에서 주인공을 맡아 남북전쟁부터 민권운동까지, 한 명의 전 노예 여성의 긴 일대기를 연기했다. 이 역할로 그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배우 최초로 에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에도 영화, 드라마, TV 영화에서 수많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1978년에는 코레타 스콧 킹(Coretta Scott King)을, 1981년에는 마바 콜린스(Marva Collins)를 연기했다. 후자의 역할로 전미 유색인종 지위 향상 협회(NAACP)가 시상하는 NAACP 이미지 어워드를 받았으며, 이후에도 커리어 내내 여러 차례 이 상의 영예를 안았다.
같은 해 그녀는 재즈 거장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와 결혼했으나, 두 사람의 관계는 격랑 속에서 이어지다 1989년 이혼으로 마무리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을 위한 목소리
적극적인 사회 참여자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권리의 강력한 옹호자였던 시슬리 타이슨은 역할 선택에 있어 확고한 원칙을 고수했다. 고정관념적이거나 굴욕적인 역할은 과감히 거절하고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선택했으며, 동료 배우들에게도 같은 태도를 요구하며 영감을 주었다.
사망 직전 출간된 자서전 저스트 애즈 아이 암(Just as I Am)에서 그녀는 이렇게 밝혔다. "내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는 동시에 시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했다. 나는 흑인에 대한 서사를 바꾸기 위해—특히 우리의 존엄성을 드러냄으로써 흑인 여성이 바라보이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때로는 몇 달씩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대가를 치르기도 한 이 신념은 그녀를 여러 세대의 흑인 배우들에게 영감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했고, 뒤를 이을 후배들을 위해 길을 연 개척자로 만들었다.
경이로운 장수 경력
시슬리는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1989년 브루스터 플레이스의 여인들(The Women of Brewster Place), 1991년 튀긴 녹색 토마토(Fried Green Tomatoes)에 출연했고, 1994년부터 1995년까지는 민권운동가 역을 맡은 드라마 스위트 저스티스(Sweet Justice)에 출연했다. 1994년에는 TV 영화 최장수 남부연합 미망인의 이야기(Oldest Living Confederate Widow Tells All)에서의 연기로 세 번째 에미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영화 헬프(The Help)에서 미시시피주 잭슨의 하녀 콘스탄틴 제퍼슨(Constantine Jefferson) 역을 맡았다. 수상의 영광도 계속되었다. 2013년에는 연극 바운티풀로의 여행(The Trip to Bountiful)에서 미스 캐리 왓츠(Miss Carrie Watts) 역으로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88세였던 그녀는 이 상을 받은 최고령 배우가 되었다. 말년의 가장 주목받은 배역은 단연 드라마 하우 투 겟 어웨이 위드 머더(How to Get Away with Murder)에서 비올라 데이비스(Viola Davis)가 연기한 캐릭터의 어머니 역일 것이다.
커리어를 기리는 상들 외에도 시슬리는 수많은 영예를 안았다. NAACP는 그녀의 연기 경력과 민권운동에 대한 공헌을 기려 스팅언 메달(Spingarn Medal)을 수여했고, 2016년에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2018년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명예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시슬리 타이슨은 2021년 1월, 70년에 걸쳐 백 편이 넘는 영화, TV 영화, 드라마, 연극에 출연하며 여러 면에서 남다른 궤적을 남긴 커리어를 마무리하며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예술적 업적과 사회적 헌신을 기리는 추모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비올라 데이비스는 이렇게 애도했다. "당신은 나에게 모든 것이었어요! 당신은 어두운 초콜릿 빛 피부를 가진 우리가 여전히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이 세상에서, 사랑받고 알아봐 주고 가치 있다고 느끼게 해 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