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노예제와 그 잔혹한 현실
브라질 작가 마리아 피르미나 도스 레이스(Maria Firmina dos Reis, 1825~1917)는 소설 우르술라(Úrsula)를 통해 브라질 흑인 노예들의 가혹한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며 노예제에 맞선 선구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1825년 10월 11일, 브라질 북동부 마라냥 주의 주도 상루이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은 지 불과 몇 달 뒤 세상에 나왔습니다. 1822년 9월 페드루 왕자가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하고, 1825년 8월 포르투갈이 이를 공식 승인한 직후였습니다.
당시 브라질 인구의 약 30%, 리우데자네이루 같은 대도시에서는 50%가 삼각무역을 통해 강제로 끌려온 아프리카 출신 노예였습니다. 포르투갈 식민지배자들은 질병과 혹독한 노동으로 원주민들이 몰살당하자, 앙골라와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인력을 조달했습니다. 노예들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과 금광, 이후에는 커피 농장과 도시의 각종 직종(가사노동자, 이발사, 구두수선공 등)에서 착취당했으며, 광산과 플랜테이션의 환경은 특히 참혹했습니다.
교사이자 문필가, 편견을 넘어선 삶
마리아 피르미나는 자유민으로 태어났지만, 출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백인 어머니 레오노르 펠리파와 흑인 아버지 조앙 에스테베스 사이의 혼혈아로, 결혼 밖에서 태어난 '사생아'라는 이중의 낙인을 안고 자랐습니다. 다섯 살 때 어머니와 비아망으로 이주한 그녀는 총명함을 발휘해 읽고 쓰기, 프랑스어를 익히고 교사 임용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35년간 초등교육에 헌신한 그녀는 1881년 퇴임 후 빈곤층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남성 중심의 문단에서 시와 단편소설을 써 지역 신문에 발표했으며, 그녀의 작품은 노예와 사회적 틀을 벗어난 여성들의 운명, 어쩌면 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주제를 감성적으로 다뤘습니다. 노예를 소유한 이모와 함께 살며 자유로운 흑인 여성이라는 특권적 위치에 있었음에도, 그녀는 노예제의 잔혹함에 분개했고 그 신념은 유일한 장편소설 우르술라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최초의 폐지주의 소설 우르술라
1859년, '우마 마라냔세(Uma Maranhense, 마라냥의 한 여성)'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우르술라는 로맨스 형식을 빌려 두 남성에게 구애받는 한 소녀의 비극적 사랑과, 주인공 우르술라와 어머니, 그리고 흑인 노예들을 통해 가부장적 사회의 규범을 따르지 않는 여성들의 운명과 노예제의 잔혹한 실상을 동시에 그려냅니다.
작중 아프리카 출신 노인 노예 수자나(Susana)는 브라질로 강제 이송된 참혹한 여정을 증언합니다:
"그들은 나와 300명이 넘는 불행한 동반자들을 배의 좁고 더러운 선창에 가두었습니다. 우리는 브라질 해안에 닿기까지 서른 날 동안 이 무덤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박탈당한 채 잔혹한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인적 화물을 선창에 가두기 위해 우리는 빽빽한 행렬로 선 채로 갇혔고, 반란을 막기 위해 유럽의 권력자들을 즐겁게 하려고 잡혀가는 우리 숲의 야수들처럼 쇠사슬에 묶였습니다."
마리아 피르미나 도스 레이스는 브라질 최초의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우르술라는 브라질 최초의 폐지주의 소설로 평가받습니다. 브라질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것은 1888년, 그녀가 생존해 있던 시기였습니다. 말년을 빈곤 속에 보낸 그녀는 자신이 키운 노예의 아들에게 거둬진 채 1917년 11월 11일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문학적 유산과 인권 투쟁의 정신은 오늘날 브라질 문학사와 인권 운동사에서 더욱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