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프 파브르 데글란틴(Philippe Fabre d'Églantine, 1750~1794)은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가이자 극작가, 시인이다. 오늘날 그는 혁명력(프랑스 공화력)의 12개월 이름을 지은 인물이자, 민요처럼 널리 불린 동요 '비가 온다, 비가 온다, 양치기 소녀(Il pleut, il pleut, bergère)'의 작사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왕비의 후원으로 오른 법조인
1750년 몽펠리에에서 태어난 그는 본래 '파브르(Fabre)'라는 성만 사용했지만, 툴루즈 문학 아카데미에서 들장미(eglantine)를 소재로 한 시로 상을 받은 뒤 '파브르 데글란틴(들장미의 파브르)'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1785년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후원 덕분에 변호인 총감(avocat général)이라는 요직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곧 신사상, 즉 혁명 사상에 마음을 기울이며 구체제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의 현장에서
그는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 당시 현장에 있었다. 이후 1791년 입법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며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진출했고, 1792년에는 국민공회 의원으로 다시 선출되었다. 처음에는 지롱드파에 속해 있었으나 점차 산악파(몽타냐르) 쪽으로 기울어 결국 그 편에 섰다.
'조국이 위험하다!'
1792년 7월 11일, 그는 입법의회에서 "조국이 위험하다(La patrie est en danger)"라는 역사적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외국 세력의 침공 위기 앞에서 모든 국민에게 무장과 구국을 촉구하는 것으로, 프랑스 혁명의 향방을 가른 중대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혁명력의 월 이름을 짓다
파브르 데글란틴이 남긴 가장 독창적인 업적은 1793년 제정된 혁명력이다. 그는 계절의 정취를 담아 12개월에 시적인 이름을 붙였다. 가을의 포도월(방데미에르)·안개월(브뤼메르)·서리월(프리메르), 겨울의 설월(니보즈)·비월(플루비오즈)·바람월(방토즈), 봄의 싹월(제르미날)·꽃월(플로레알)·초원월(프레리알), 여름의 수확월(메시도르)·열월(테르미도르)·과일월(프뤽티도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이름들은 오늘날에도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낭만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단통과 함께 단두대로
그는 단통(Danton)의 비서관으로 활동하며 코르들리에 클럽을 중심으로 단통파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동인도회사 청산 과정에 얽힌 부정 스캔들 등으로 입지가 크게 흔들렸고, 1794년 3월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급진 정권에 의해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5일, 그는 단통, 카미유 데물랭 등 동료들과 함께 단두대에서 생을 마쳤다. 향년 43세였다.
극작가이자 시인, 정치가로 다재다능했던 파브르 데글란틴은 혁명의 물결에 몸을 실었다가 결국 그 칼날에 스스로 쓰러진, 프랑스 혁명의 영광과 비극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