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앙 드 몽모랑시의 아들들: 종교전쟁기 프랑스를 헤쳐 간 두 형제

앙 드 몽모랑시의 아들들: 종교전쟁기 프랑스를 헤쳐 간 두 형제

16세기 프랑스 종교전쟁을 관통한 거목 앙 드 몽모랑시(Anne de Montmorency)의 아들들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걸으며 격변기 프랑스의 운명에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특히 장남 프랑수아와 차남 앙리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대에 상반된 선택을 하며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프랑수아 드 몽모랑시(François de Montmorency, 1530~1579)

몽모랑시 가문의 장남 프랑수아는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화려한 군사 경력을 쌓았고, 이후 파리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당시 왕정을 좌우하던 강력한 가톨릭 명문가인 기즈(Guise) 가문에 맞서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나 1572년, 그는 총독직을 내려놓고 물러나면서 파리를 가톨릭 과격 세력의 손에 넘겨주게 됩니다. 결국 그 권력 공백 속에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Saint-Barthélemy)이 벌어졌습니다. 학살이 끝난 뒤 프랑수아는 몽포콩(Montfaucon) 교수대에 내걸린 사촌 가스파르 드 콜리니(Gaspard de Coligny) 제독의 시신을 직접 거두어 내리며 가문의 명예를 지켰습니다.

샤를 9세 치세에도 그는 기즈 가문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고, 결국 반기즈 성향의 귀족 연합 세력인 '불만파(Malcontents)'에 합류했습니다.

앙리 드 몽모랑시(Henri de Montmorency, 1534~1614)

차남 앙리는 처음에는 형과 달리 가톨릭 진영, 특히 기즈 가문에 가까운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을 계기로 태도를 바꿔, 세 형제와 함께 프로테스탄트 세력과 정치적 화해와 동맹을 모색했습니다.

이후 그는 오랜 정치·군사 경력을 인정받아 앙리 4세(Henri IV)에 의해 프랑스의 최고 군직인 대원수(콩스타블, Constable of France)로 임명되었으며, 몽모랑시 가문의 위상을 한 세대 더 이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