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가스파르 2세 드 콜리니(1519~1572): 프랑스 해군 제독이자 위그노 지도자의 비극

명문 귀족 출신의 군인

가스파르 2세 드 콜리니(Gaspard II de Coligny)는 프랑수아 1세 휘하의 원수(마레샬)였던 아버지의 아들이자, 왕국 대시종(콩스타블)을 지낸 몽모랑시 공작의 조카였습니다. 당대 최고 명문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그는 인문주의에 기반한 계몽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훌륭한 교육을 마친 콜리니는 자연스럽게 군인의 길을 선택했고,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1552년 프랑스 해군 제독(아드미랄)에 임명되었습니다.

위그노 진영의 지도자로

처음 콜리니는 종교개혁에 대해 매우 온건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차 개신교(위그노) 진영의 핵심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부상했고, 프랑스를 혼란에 빠뜨린 초대 종교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후 샤를 9세의 궁정으로 돌아온 콜리니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플란데른 지역에서 스페인과 벌어지던 분쟁에 국왕을 개입시키려는 전략을 추진했습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과 최후

1572년 앙리 드 나바르와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의 결혼식 직후, 콜리니는 첫 번째 암살 시도의 표적이 되어 부상을 입었습니다. 샤를 9세 국왕은 직접 그의 병상을 찾아가 안부를 묻고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8월 23일 밤, 역사에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로 기록된 대학살이 시작되면서 콜리니는 자객들의 단검에 찔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창밖으로 내던져진 뒤 파리의 몽포콩 교수대로 끌려가 고난의 상징처럼 전시되었습니다. 위그노 진영의 거목이 겪은 이 비극적 최후는 프랑스 종교전쟁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