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셸 네(Michel Ney)는 '용사 중의 용사(le Brave des braves)'라는 별명으로 불린 프랑스 제국의 원수다. 평민 출신으로 혁명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가까워지며 프랑스 군 역사상 가장 용맹한 지휘관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남겼다.
엘힝겐의 영광과 독일·스페인 전역
1805년 엘힝겐 전투에서 네는 뛰어난 지휘력을 발휘해 큰 영광을 얻었고, 이 공로로 원수 칭호를 받았다. 이후 예나, 아이라우, 프리틀란트 등 나폴레옹 전쟁의 주요 전투 대부분에 참전하며 무공을 쌓았다. 이후 스페인 전역에 파견되었으나 술트 원수 등 동료 지휘관들과 자주 의견 충돌을 빚으며 고된 시기를 보냈다.
러시아 원정과 전설적 후위 작전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네는 최전선에서 활약했고, 특히 모스크바 강(보로디노) 전투 이후 철수 과정에서 후위 부대를 지휘하며 영웅적인 모습을 보였다. 본대에서 고립된 위기 속에서도 병사들을 이끌고 돌파해 귀환했으며, 나폴레옹은 그를 '가장 용감한 원수'라고 칭송했다.
프랑스 방어전과 나폴레옹 재등장
1814년 연합군이 프랑스 본토를 침공하자 네는 방어전 거의 모든 전투에 참여했다. 나폴레옹 실각 후 부르봉 왕조가 복귀하자 네는 루이 18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을 '철창에 담아 데려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배치된 곳에서 옛 부하들의 열렬한 환영 앞에 마음이 흔들린 그는 결국 나폴레옹의 품으로 돌아갔다.
워털루의 패배와 비극적 최후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네는 여러 차례 판단 착오를 저질렀는데, 이는 그루시 원수의 잘못된 판단과 함께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기병 돌격을 반복하는 동안 보병과 포병의 유기적인 지원 없이 적진을 공격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패색이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최전선에서 싸웠다.
왕정복고 후 네는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1815년 12월 7일 처형 당일, 그는 눈가리개를 거부하며 처형대 앞에서 병사들에게 외쳤다. "군인들이여, 내 심장을 겨눠라!" 이 한마디는 오늘날까지 그의 용기를 상징하는 말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