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재산 없는 기사 가티에 상자부아르(?~1096), 민중십자군의 비극

재산 없는 기사 가티에 상자부아르(?~1096), 민중십자군의 비극

이름부터 '재산이 없는' 기사

가티에 상자부아르(Gauthier Sans-Avoir, ?~1096)는 프랑스 일드프랑스 지방의 푸아시(Poissy)를 다스리던 영주였습니다. 성명에 붙은 '상자부아르(Sans-Avoir)'는 문자 그대로 '재산이 없는'이라는 뜻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넓은 영지나 강력한 권한을 지닌 유력 영주는 아니었습니다. 큰 봉건적 책임이나 영주로서의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던 그에게, 동방의 성지 탈환을 외치던 십자군 운동은 평범한 삶을 벗어나 명예를 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민중십자군 이끌다

1096년, 가티에는 은둔자 피에르가 주도한 민중십자군의 한 부대를 이끌고 동진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 원정은 규율과 체계적인 보급이 부족한 채 진행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참혹한 희생이 계속되었습니다. 발칸 반도를 통과하는 길목에서 충돌과 약탈이 이어졌고, 그의 부대 대다수는 비잔틴 제국의 영토에 도달하기도 전에 학살당하거나 흩어져 버렸습니다.

니케아 근교에서의 최후

가티에 본인은 어떻게든 소아시아 지역까지 진격했지만, 니케아(오늘날 튀르키예의 이즈니크) 인근에서 셀주크 튀르크군의 매복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1096년 10월의 일로, 지도자의 죽음과 함께 민중십자군은 사실상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비극적인 최후은 무질서한 민중 십자군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이후 제대로 무장하고 조직된 왕공후들의 정식 십자군이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