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이단의 아들이 왕의 그림자가 되기까지, 기욤 드 노가레(1260~1314)

이단의 아들이 왕의 그림자가 되기까지, 기욤 드 노가레(1260~1314)

기욤 드 노가레(Guillaume de Nogaret, 1260~1314)는 프랑스 카페 왕조의 국왕 필리프 4세를 보좌한 대표적인 법률가이자 정치가다. 이단으로 단죄된 아버지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왕권 강화의 최전선에 서며 중세 프랑스 정치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겼다.

이단의 아들, 왕의 신하로

노가레의 아버지는 툴루즈 출신으로, 알비 십자군 전쟁 당시 이단 혐의로 단죄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노가레는 법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1295년 말 파리에서 필리프 4세를 직접 섬기는 신하로 발탁되었다. 같은 시기에 그는 고등법원(파를망)과 국왕 평의회 등 왕권의 핵심 기구에도 합류하게 된다.

세기가 바뀌며 커져간 권력

1300년 전후, 즉 세기가 전환되면서 노가레의 책임과 영향력은 급격히 확대되었다. 그는 왕의 명령을 집행하고 정책을 설계하는 중심 인물로 부상했으며, 사실상 수석 고문에 가까운 위치까지 올라섰다.

두 개의 종교 사건: 아냐니와 성전 기사단

노가레를 역사에 각인시킨 것은 단연코 두 건의 극적인 종교 사건이다.

첫 번째는 아냐니 사건(1303)이다. 교황 보니파시우스 8세와 첨예하게 대립하던 필리프 4세의 명을 받아, 노가레는 이탈리아 아냐니로 가서 교황을 체포하려 시도했고 그를 리옹으로 압송하려 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교황에게 직접 손창구이를 퍼붓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하느님의 대리인을 폭행한 사건은 당대 유럽을 발칵 뒤집은 스캔들이었다.

두 번째는 성전 기사단의 몰락(1307)이다. 노가레는 1307년 10월 13일, 프랑스 전역의 성전 기사들을 한꺼번에 검거하는 대대적인 작전을 주도했다. 이 사건은 기사단의 재산 몰수와 해체로 이어졌고, 마지막 총장 자크 드 몰레는 결국 화형에 처해졌다.

총장의 저주였을까?

흥미롭게도 노가레는 총장 자크 드 몰레가 처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화형대 위에서 몰레가 노가레와 국왕을 하느님 앞에 불러내 저주했다는 전승이 전해지며, 후대에는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몰레의 저주'와 연결 짓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