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에르베르 드 베르망두아 백작(900~943): 샤를마뉴의 혈통을 이은 서프랑크의 실질적 지배자

베르망두아 백작가(Vermandois)는 샤를마뉴의 차남인 이탈리아 왕 피팽(Pépin Roi d'Italie)에서 비롯됩니다. 피팽은 810년,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후손들은 서프랑키아에서 베르망두아 백작직을 계승하며 명문 왕족의 혈통을 바탕으로 점차 세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파리를 감싸며 형성된 강대한 귀족 연합

에르베르(Herbert)는 사촌들과 손잡고 파리의 서쪽, 북쪽, 동쪽 일대를 아우르는 강력한 귀족 세력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이처럼 광범위한 영향권을 확보하면서 베르망두아 가문은 왕권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 막중한 정치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국왕 카롤루스 3세의 유폐

에르베르의 권세를 상징하는 사건은 바로 서프랑크 왕 카롤루스 3세(Charles III)를 페론(Péronne)의 탑에 가둔 일입니다. 한 국왕을 직접 유폐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세력이 한 지방 백작의 수준을 훨씬 넘어섰음을 보여줍니다.

라울 왕과의 대립, 그리고 새로운 동맹

이후 에르베르는 라울(Raoul) 국왕과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판도가 바뀌면서 그는 위그 대공(Hugh the Great)과 노르망디 공작 기욤 롱슈에페(Guillaume Longue-Épée)와 손을 잡고, '해외왕'이라 불리는 루이 4세(Louis IV d'Outremer) 국왕에 맞서는 진영에 합류하게 됩니다.

죽음 이후, 위그 대공이 정리한 상속

943년 에르베르가 세상을 떠나자, 그가 남긴 방대한 영지와 권익의 상속 문제는 오랜 숙적이자 동맹이었던 위그 대공에 의해 처리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서프랑크 왕국에서 왕권을 능가하는 세력이 누구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