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1768~1848),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개척자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1768~1848),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개척자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 1768~1848)은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을 연 문필가이자,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정치가·외교관입니다.

신념 없이 시작된 군인 생활과 미국 여행

브르타뉴 해안 도시 생말로 출신인 샤토브리앙은 뚜렷한 소명 의식 없이 군인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장교 임관에 좌절한 뒤 파리로 옮겨 문단에 발을 들였고, 1791년에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자 미국으로 항해를 떠났습니다. 북미 대륙의 광활한 자연은 훗날 그의 문학 세계에 깊은 영감을 남겼습니다.

보나파르트 휘하의 전권공사, 그리고 결별

1800년 프랑스로 귀국한 그는 글로 명성을 얻었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정권 아래 전권공사로 임명되어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1804년 앙기앙 공작(Duc d'Enghien)이 처형되는 사건을 계기로 나폴레옹 체제에 환멸을 느껴 직위를 내려놓았습니다.

왕정복고와 정치적 말년

1814년 부르봉 왕조가 복귀하자 샤토브리앙은 정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귀족원 의원과 외무장관, 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백일천하 때 나폴레옹에게 가담한 네 원수(Marshal Ney)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한 군법회의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830년 성립된 7월 왕정에는 끝내 적대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정치 무대에서 물러났습니다.

영원히 남을 문학적 유산

그러나 오늘날 샤토브리앙의 이름을 빛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위대한 문학입니다. 미국 원주민 소녀의 비극을 그린 『아탈라(Atala)』, 세기적 병을 앓는 젊은이의 초상 『르네(René)』, 그리고 기독교 문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기독교의 정수(Génie du christianisme)』는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방향을 연 기념비적 작품들입니다. 말년에 집필한 회고록 『무덤 저편의 회상(Mémoires d'outre-tombe)』 역시 그의 문학적 업적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