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12. 사와이 자이 싱의 교육과 학문적 업적

12. 사와이 자이 싱의 교육과 학문적 업적

마하라자 사와이 자이 싱(Maharaja Sawai Jai Singh)은 당대 최고 수준의 학식을 갖춘 군주였습니다. 산스크리트어와 페르시아어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수학, 기하학, 천문학, 점성술 분야에서도 깊은 조예를 지녔습니다. 그는 학문 진흥을 위해 수많은 학자들에게 후원과 보금자리를 제공했습니다. 마하라슈트라, 텔랑가나, 바라나시 등지의 저명한 학자들을 자이푸르로 초빙해 '브라흐마푸리(Brahmapuri)'라는 학자 촌락을 조성하고 그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자이 싱은 무함마드 샤리프와 무함마드 메흐리라는 두 사람을 해외에 파견해 필사본 수집 임무를 맡겼습니다. 별자리의 운행을 연구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 수학과 점성술 관련 필사본을 찾아 확보하도록 한 것이며, 이렇게 모인 자료를 바탕으로 가장 정밀한 계산 도구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천문표 편찬과 번역 사업

서기 1725년경 자이 싱은 정밀한 별자리 천문표를 작성하고, 무굴 황제 무함마드 샤의 이름을 따 '지치 무함마드샤히(Zij-e-Muhammadshahi)'라 명명했습니다. 이 표들은 '판창(Panchang)', 즉 역법서로도 불립니다. 자이 싱은 점성술사 자간나트에게 점성술을 배웠으며, 스스로도 '자이싱 카리카(Jaisingh Karika)'라는 점성술 저술을 집필했습니다.

자간나트는 자이 싱의 후원 아래 서양 고전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이끌었습니다. 기하학의 고전인 유클리드의 『원론(Elements)』을 산스크리트어로 옮겼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명저 '시타크시스(Citaxis)'의 페르시아어 번역본을 '시단타 삼라트(Siddhanta Samrat)'라는 제목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책은 '시단타 사르 카우스투브(Siddhant Saar Kaustubh)'라고도 불립니다.

자이 싱의 영향으로 점성술사 케발람은 프랑스어 로그 계산표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해 '디파트먼트 테이블(Department Table)'이라는 저작을 남겼고, 나얀 무코파디야이는 아랍어 문헌 '우카르(Ukar)'를 산스크리트어로 옮겼습니다. 이 밖에도 미티야 지바 차야 표, 두크 팍샤 그란트, 타라 사라니 등 여러 문헌이 편찬되었습니다. 한편 푼다리크 라트나카르가 지은 '자이싱 칼파두람(Jaisingh Kalpaduram)'에는 당시 사회와 정치상이 상세히 기록되어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궁정 시인들의 찬사

사와이 자이 싱의 궁정에는 수많은 학자와 문인이 모였으며, 그들은 한결같이 마하라자의 통치를 찬양했습니다. 시인 네미찬드는 자이 싱이 황제의 존엄을 지키며 왕업을 일으켜 가문을 빛냈고, 언제나 자비를 베풀어 모든 질투를 이겼으며, 힌두 백성의 수호자로서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하는 구전(九傳)의 보물 같은 존재라고 노래했습니다.

시인 크샬찬드는 "비산 싱의 아들 자이 싱 라이가 다스리니, 만백성이 함께 행복하다"라며 그의 통치 아래 온 백성이 평화롭게 살았음을 읊었습니다. 시인 바크트람 사흐는 저서 『위즈덤 빌라스(Wisdom Vilas)』에서 델리의 황제가 자이 싱에게 '사와이' 칭호를 내렸으며, 전차·말·코끼리·병사를 아우르는 사군(四軍)의 대군을 거느린 위대한 군주였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외국 학자들과의 교류

자이 싱은 포르투갈, 프랑스, 독일 출신 학자들을 자이푸르로 불러들여 유럽에서 발전하는 학문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했습니다. 해외에서 서적을 직접 구매해 자이푸르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소개했으며, 그가 건설한 천문대에서는 수많은 외국 학자들이 연구 활동을 벌였습니다. 또한 인도 항구 도시 수라트를 통해 영국산 깔때기 모양의 천문 기구, 지도, 지구의(地球儀) 등도 입수했습니다.

자이 싱은 고아 부왕을 통해 포르투갈 국왕에게 과학 지식을 갖춘 의사를 자이푸르로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요청에 따라 1730년 11월 6일 메놀 피게레도와 페드루 다 실바 레이탕이라는 두 의사가 고아에서 자이푸르에 도착했습니다. 자이 싱은 메놀 피게레도에게 충분한 자금을 지급해 포르투갈로 보냈고, 피게레도는 그곳에서 문헌과 기구를 구입해 돌아왔습니다. 페드루 다 실바의 손자는 '하킴 체바르(Hakim Chevar)'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자이 싱의 초청으로 프랑스 학자 클로드 부디에, 바이에른 출신의 안데 슈트라우블, 앙투안 게벨 슈페르거 등도 자이푸르를 방문해 학문 교류에 힘을 보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