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데 가문의 시조, 루이 1세
루이 1세 드 콩데(Louis Ier de Bourbon, prince de Condé, 1530~1569)는 앙투안 드 부르봉(Antoine de Bourbon)의 동생으로, 훗날 프랑스 국왕이 되는 앙리 4세(Henri IV)의 숙부였다. 그는 콩데 가(家)의 창시자로서, 이 가문은 이후 19세기까지 프랑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명문 귀족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군인으로서의 삶과 기즈 가문과의 대립
루이는 앙리 2세(Henri II) 치세 하에서 군인으로서 경력을 쌓았으며, 1557년 프랑스군이 참패한 생캉탱 전투(Bataille de Saint-Quentin)를 겪었다. 프랑수아 2세(François II)가 즉위한 뒤에는 정권을 장악한 기즈(Guise) 가문 세력의 강력한 정적(政敵)으로 부상하였다.
1560년 앙부아즈 음모 사건(Conjuration d'Amboise)의 배후 조종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그는 사형 선고까지 받았으나, 즉위한 새 국왕 샤를 9세(Charles IX)의 사면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위그노 전쟁과 비극적 최후
칼뱅주의 신자였던 루이는 종교전쟁이 발발하자 프로테스탄트(위그노) 진영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하였다. 1562년 바시 학살(Massacre de Wassy) 이후 무장 봉기에 나서 랑그독(Languedoc)과 루아르(Loire) 유역의 여러 도시를 점령하며 승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세력이 고립되면서 1562년 드뢰 전투(Bataille de Dreux)에서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석방된 이후에도 그는 다시 무기를 들었으나, 1569년 자르낙 전투(Bataille de Jarnac)에서 패배하였다. 부상을 입은 채 항복을 시도하던 그는 몽테스키우(Montesquiou)에게 비겁하게 살해되었다. 그의 시신은 가톨릭 진영에 의해 모욕당했으며, 나아가 의자에 실린 채 이틀 동안 공개되는 굴욕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