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경건왕 루이 1세(778~840), 카롤루스 대제의 유일한 후계자

경건왕 루이 1세(778~840), 카롤루스 대제의 유일한 후계자

경건왕 루이 1세(Louis le Pieux, 778~840)는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와 힐데가르드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이자 성인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이었다. 그는 781년 아버지에 의해 아키텐 왕으로 임명되었고, 813년에는 공동 황제로서 제위에 연임되었다.

첫 번째 결혼과 세 아들의 서열

왕비 에르멘가르드와의 사이에서 세 아들을 두었다. 장남인 로타르 1세는 공동 통치자로 지정되어 제국의 유일한 후계자로 간주되었으며, 차남 피핀과 삼남 독일인 루트비히는 형인 로타르에게 복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재혼과 '대머리 카를'의 탄생

818년 에르멘가르드 여왕이 사망하자 루이는 바바리아(바이에른) 출신의 미모의 귀부인 유디트와 재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823년 막내아들 '대머리 카를'(샤를 2세)이 태어나면서 제국의 운명은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영토 재분할과 아들의 반란

새로운 영토 분할에서 루이는 막내 카를에게 자신의 영토 중 가장 큰 몫을 물려주고자 했다. 이 결정에 강하게 반발한 세 장자들은 귀족 세력을 규합하여 반기를 들었다. 결국 루이는 830~831년경 실권을 모두 잃었고, 833년에는 장남 로타르가 아버지를 폐위시키는 극단적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후 나머지 아들들의 힘으로 835년 제위를 되찾았지만, 제국의 권위는 이미 크게 실추된 상태였다. 루이 1세는 840년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사후 제국은 아들들 간의 분쟁 끝에 베르됭 조약(843)으로 분할되고 만다.

관련 인물

  •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 프랑크 왕국의 국왕이자 서로마 황제
  • 경건왕 루이 1세 – 프랑크의 왕 겸 서방 황제(재위 814~840)
  • 대머리 카를 2세 – 루이 1세의 막내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