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합스부르크의 마리 루이즈(1791~1847), 나폴레옹의 두 번째 황후

합스부르크의 마리 루이즈(1791~1847), 나폴레옹의 두 번째 황후

오스트리아 황제의 딸로 태어나다

마리 루이즈는 합스부르크-로렌 가문 출신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의 딸이다. 유럽 최고 명문 왕가의 공주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적 혼인의 카드로 거론될 운명을 안고 있었다.

나폴레옹과의 정략 결혼

1810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후계자를 얻기 위해 첫 번째 아내 조제핀과 이혼했고, 그의 새 아내로 선택된 사람이 바로 마리 루이즈였다. 유럽의 강대국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제국 사이의 동맹을 상징하는 이 결혼은 당시 유럽 정치판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로마 왕 나폴레옹 2세의 탄생

결혼 생활은 성공적이었고, 마리 루이즈는 1811년 아들을 출산했다. 이 아이는 '로마 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나폴레옹 2세로, 나폴레옹 제국의 후계자가 되었다. 나폴레옹은 오랫동안 갈망하던 적자를 얻게 되어 크게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섭정 활동과 제국의 몰락

1813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 이후 전선에 있는 동안 마리 루이즈는 프랑스 제국의 섭정으로 임명되어 국정을 대행했다. 그러나 연합군이 프랑스 본토로 침공해오자, 그녀는 남편 곁에 남기 않고 아들과 함께 오스트리아로 떠나 아버지 프란츠 2세의 보호 아래 들어갔다.

두 번의 재혼

나폴레옹 실각 이후 마리 루이즈는 파르마 공녀로 지위를 유지하며 새 삶을 시작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장교였던 나이페르크 백작과 재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고, 나이페르크 백작 사후에는 봄벨레스 백작과 다시 결혼했다. 1847년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파르마 통치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