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아 황녀에서 프랑스 왕비로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의 딸로 태어나, 1774년 남편 루이 16세의 즉위와 함께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이라는 배경은 그녀에게 화려한 지위를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프랑스 국민들에게 '외국인 왕비'라는 낙인을 찍히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왕비로서의 삶과 '목걸이 사건'
그녀는 경솔하고 사치스러운 행동으로 대중의 호감을 잃었으며, 당시 프랑스가 절실히 필요로 하던 국정 개혁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1785년에 일어난 '목걸이 사건(Affaire du collier)'은 그녀와는 무관한 사기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비의 명성에 치명타를 입히며 민중의 분노를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비극적 최후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가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도록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으며, 외국 세력과 내통했다는 의혹으로 더욱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1792년 8월 10일 왕정이 무너진 후 그녀는 파리의 탕플 감옥에 수감되었다.
마침내 1793년 10월 16일, 그녀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그러나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놀라운 품위와 긍지를 잃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며,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