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앙리 2세의 막내아들, 알랑송 공작 프랑수아(1555~1584)의 파란만장한 생애

앙리 2세의 막내아들, '헤라클레스'라는 세례명

프랑수아(1555~1584)는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와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이었다. 왜소한 체구를 지녔지만, 태어날 때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후 1560년에 요절한 큰형 프랑수아 2세의 이름을 물려받아 '프랑수아'가 되었고, 알랑송 공작에 봉해졌다.

형 앙리에 대한 질투, 모든 것이 대조적이었던 두 형제

그는 반골 기질이 강한 왕자로,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형 앙주 공작 앙리(훗날의 앙리 3세)에게 특히 깊은 질투를 품고 있었다. 성격은 물론 외모까지 두 형제는 극명하게 대조되었다. 프랑수아는 잘생긴 형과 달리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었고, 얼굴에는 천연두로 인한 깊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불만파의 영수로서의 음모와 체포

샤를 9세 치세의 궁정에서 프랑수아는 왕족과 귀족들이 모인 '불만파(Malcontents)' 세력의 선두에 섰다. 형 앙리가 폴란드 국왕으로 선출되어 떠나자, 그는 나바르의 앙리(훗날의 앙리 4세)와 손잡고 형 대신 자신이 왕위 계승자가 되려는 음모를 꾸몄다. 결국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체포되어 궁정에서 감시를 받으며 지내야 했다.

탈출과 제5차 종교전쟁, '몽쉐르 화약'

이후 형 앙리 3세의 궁정에서 굴욕을 당하게 되자, 프랑수아는 성벽의 구멍을 통해 파리에서 몸을 피했다. 나바르 측 위그노(프랑스 개신교도)들과 합류하면서 제5차 종교전쟁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프랑수아는 개신교도들에게 예배의 자유를 되돌려주는 '몽쉐르 화약(Paix de Monsieur)'을 성사시켰다. '몽쉐르(Monsieur)'는 국왕의 남동생에게 붙는 호칭으로, 곧 프랑수아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정치적 전성기, 엘리자베스 1세와의 혼담

형과 화해한 뒤 그는 승전의 기세로 궁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다. 이 시기 프랑수아는 정치적 권력의 절정에 올랐고, 무려 22살 연상인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의 결혼설까지 거론되며 유럽의 주목을 받았다.

네덜란드 원정과 갑작스러운 최후

1579년, 프랑수아는 네덜란드 독립 운동의 지도자 오라녜 공 빌럼(윌리엄 오브 오렌지)의 초청을 받아 네덜란드 여러 주의 주권자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러나 안트베르펜에서 군사적 실패를 거듭하며 명예를 실추했고, 1584년 결핵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발루아 왕조의 직계 계승 가능성을 사실상 끝냈다는 점에서 프랑스 왕위가 부르봉가로 넘어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