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 1841~1929)는 의사 출신의 프랑스 정치인이자 언론인으로, 1870년 제2제국의 몰락과 함께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정치 입문과 '내각 킬러'라는 별명
그는 파리 시장으로 처음 선출된 뒤, 1871년 2월 8일 국민의회 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파리 코뮌 기간(1871년 3월 18일~5월 27일)에는 사임했으며, 1875년 파리 시의회 의장을 맡은 후 이듬해 극좌 성향의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내각 킬러(tombeur de ministères)'라 불린 클레망소는 레옹 강베타와 줄 페리의 내각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격렬한 야당 정치가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드레퓌스 사건과 오로르지
부랑주의와 파나마 스캔들로 인해 정치적 신뢰를 잃고 한동안 정계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그는 드레퓌스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자신이 발행하던 신문 L'Aurore(오로르)에 에밀 졸라의 유명한 공개 서한 「J'accuse…!(나는 고발한다)」를 게재하며 무죄를 주장한 드레퓌스 편에 섰던 것입니다.
내무장관 시절과 좌파와의 결별
1902년 상원의원이 된 그는 1906년 내무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노동 현장의 파업을 강경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 과정에서 급진파 동료들과의 연대가 깨지면서 점차 반대파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수상 취임과 1차 세계대전 지도
1917년, 전환이 교착 상태에 빠진 위기 속에서 레몽 푸앵카레 대통령의 요청으로 수상에 재기용된 클레망소는 철저한 각오로 전쟁을 지도했습니다. 언론 검열과 반전 세력 탄압 등 강권적인 통치에도 불구하고 승리로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들로부터 '승리의 아버지(Père la Victoire)'라는 애칭을 받으며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종전 후에는 1919년 베르사유 조약 협상을 주도하며 패전국 독일에 대한 엄격한 처우를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192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정치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고, 이후 은퇴하여 1929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기본 정보
- 생몰: 1841년 ~ 1929년
- 신분: 정치인
- 기타 활동: 언론 발행인 (신문 L'Aurore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