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툴루즈 백작으로서의 삶
생 질의 레이몽 4세(Raymond IV de Saint-Gilles, ?~1105)는 프랑스 남부를 대표하는 강대한 영주였다. 1088년 형 기욤 4세(윌리엄 4세)의 뒤를 이어 툴루즈 백작위에 올랐으며, 당시 유럽에서 손꼽히는 부와 병력을 갖춘 귀족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뛰어난 재능과 확고한 신앙심, 그리고 성실함으로 널리 존경받았다.
십자군 운동에 가장 먼저 응답하다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클레르몽에서 십자군 원정을 호소하자, 레이몽 4세는 가장 먼저 응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툴루즈를 떠나기 전, 남은 평생을 이교도와의 싸움에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며 결의를 굳혔다. 이러한 헌신은 그를 동시대 십자군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존재로 만들었다.
1096년 10월 말, 그는 아들 베르트랑에게 영지의 통치를 맡긴 뒤 세 번째 십자군 부대를 직접 이끌고 출정했다. 그는 이탈리아를 경유하는 진로를 선택했으며,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다른 십자군 부대들과 합류했다.
예루살렘 공성전과 트리폴리에서의 최후
레이몽 4세는 1099년 예루살렘 공성전에 참전하여 도시 함락에 기여했으며, 이후 다시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갔다. 동방에 남기를 택한 그는 1103년 지중해 연안의 전략적 요충지인 트리폴리 포위전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는 도시를 정복하기를 보지 못한 채 1105년 트리폴리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시작한 트리폴리 공방전은 이후 십자군 국가인 트리폴리 백국의 건국으로 이어졌으며, 그의 아들 베르트랑이 이 나라의 초대 백작이 되었다. 레이몽 4세는 십자군 역사에서 가장 충성심 깊고 유능한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