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 미국에서 제화공(신발 장인)은 월급을 받기보다는 자신이 만든 신발 한 켤레당 급여를 받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숙련된 제화공의 평균 임금은 신발 한 켤레당 2~4실링 수준이었습니다.
지역과 조건에 따라 달랐던 임금
이러한 임금은 신발의 종류, 사용된 재료의 품질, 그리고 지역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매사추세츠 보스턴처럼 상업이 발달한 도시의 제화공은 농촌 지역의 제화공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도시에서는 신발 수요가 많았고, 값진 가죽을 사용한 고급 신발을 만들어 높은 대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임금 외에 제공된 혜택: 숙식과 견습 제도
흥미로운 점은 제화공들이 현금 임금 외에도 고용주로부터 숙식(숙소와 식사)을 제공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견습생에게는 이런 조건이 보편적이었는데, 견습생들은 통상 마스터 제화공이라 불리는 장인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몇 년에 걸쳐 실무를 통해 기술을 익혔습니다. 이러한 견습 과정은 대개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훈련을 마친 후에야 독립적으로 장인으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던 전문 기술직
제화업은 단순 노동이 아닌, 오랜 훈련과 경험이 필요한 숙련 기술직이었습니다. 그 결과 제화공들은 대체로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는 구성원이었으며, 지역 정부의 공직이나 기타 중요한 역할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당시 미국 식민지에서 제화공은 가장 흔하고 필수적인 직업 중 하나였기에, 그들의 사회적 위상 또한 상당히 높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