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라사에 입성한 최초의 유럽 여성, 불굴의 탐험가 알렉산드라 데이비드-닐

루이즈 외제니 알렉산드린 마리 다비드(Louise Eugenie Alexandrine Marie David), 통칭 알렉산드라 데이비드-닐(Alexandra David-Néel, 1868~1969)은 프랑스·벨기에 국적의 탐험가이자 언론인, 작가입니다. 1924년에는 티베트의 라사에 머문 최초의 유럽 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저항 정신으로 가득한 유년 시절

1868년 10월 24일, 알렉산드라는 프랑스 생망데(Saint-Mandé)에서 아버지 루이 다비드와 어머니 알렉산드린 보르그만 사이의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녀에게 몰래 개신교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1871년 5월, 페르 라셰즈 묘지의 '연합자의 벽' 앞에서 147명의 파리 코뮌 지지자가 처형된 소식에 충격을 받은 루이 다비드는 세 살이 채 되지 않은 알렉산드라를 그 자리에 데려가 이 폭력을 직접 기억하게 했습니다. 두 해 뒤 가족은 벨기에로 이주했습니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내내 알렉산드라는 어머니의 친구였던 벨기에 출신 무정부주의 지리학자 엘리제 르클뤼(Élisée Reclus)와 교류하며 당대의 무정부주의와 페미니즘 사상을 접했습니다. 훗날 그녀는 여성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지만, 당시의 일부 주장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특히 참정권보다 경제적 자립을 위한 투쟁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인도 여행과 불교와의 만남

1888년부터 알렉산드라는 프리메이슨 활동에 참여했고, 이듬해에는 불교로 귀의했습니다. 동양과 오리엔탈리스트의 길에 깊은 매력을 느낀 그녀는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를 공부하고 여러 강좌를 수강했으며, 런던에서 영어를 연마했습니다. 한편 아버지의 권유로 브뤼셀 왕립 음악원에 들어가 성악과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1895년부터 1897년까지 하노이 오페라의 수석 가수로 활약했으며, 이후 아테네와 튀니스에서 무대에 섰습니다. 튀니스에서 그녀는 먼 친척이자 튀니지 철도 수석 기술자였던 필립 네엘(Philippe Néel)을 만나 운명적인 인연을 맺습니다.

1904년 8월 4일, 알렉산드라는 필립 네엘과 결혼했습니다. 1911년, 그녀는 남편에게 18개월 안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인도로 세 번째 여행을 홀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실제 귀환은 무려 14년 후였고, 그동안 부부는 서신으로만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1912년, 그녀는 시킴(히말라야)으로 여행을 떠나 그 지역 수도원들에서 불교 수행을 본격적으로 심화시켰습니다. 그곳에서 훗날 양자가 되는 아푸르 용덴(Aphur Yongden)을 만났고, 함께 해발 4,000미터가 넘는 동굴로 들어가 은거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가이드이자 통역사, 티베트어 스승 역할을 맡은 라마 카지 다와 삼둡(Kazi Dawa Samdup)의 동행으로 제13대 달라이 라마를 알현하여 불교에 관한 심오한 설법을 들었습니다. 여러 수도원의 원장들(곰첸, gomchen)에게도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중 한 분은 그녀에게 '예셰 퇴메(Yshé Tömé)', 즉 "지혜의 등불"이라는 종교 이름을 내려주었습니다.

금지된 성지, 라사 입성

1916년 7월 13일, 선교사들이 부추긴 티베트 출입 금지 조치를 과감히 무시하고 알렉산드라 데이비드-닐은 용덴과 함께 티베트로 향했습니다. 뜻깊은 환대 속에 그녀는 현지의 사찰과 수도원을 방문하고 고승들을 만나 불교 경전을 탐독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체류는 영국 식민 당국의 심기를 건드렸고, 시킴으로 돌아오자마자 추방당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이후 알렉산드라와 용덴은 인도, 일본,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티베트 라마의 동행을 얻어 수년간 중국 대륙을 동에서 서로 횡단한 뒤, 쿰붐 수도원에 3년간 머무르며 학문을 이어갔습니다.

1924년, 거지와 승려로 변장한 알렉산드라와 용덴은 금지된 도시 라사에 성공적으로 잠입해 두 달간 머물며 주변 수도원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결국 알렉산드라의 정체가 들통났지만, 도시 총독이 개입하기 전에 기지를 발휘해 자리를 떠났습니다.

다음 해 두 여행자는 드디어 프랑스에 도착했고,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모험이 가져다준 폭발적인 명성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녀는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그 이야기는 책으로 출판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디뉴레벵(Digne-les-Bains)에 몇 년간 정착한 그녀는 용덴을 합법적으로 입양하고, 여행기를 집필하며 유럽 전역에서 강연 활동을 펼쳤습니다.

끝나지 않은 모험, 그리고 마지막 여정

1937년, 6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라는 용덴과 함께 다시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중일전쟁 한복판이었고, 기근과 전염병으로 황폐해진 현실을 목격한 그들은 전투를 피해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41년, 알렉산드라는 남편 필립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1946년, 그녀는 인도를 거쳐 78세의 나이로 프랑스로 돌아와 집필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그러나 1955년, 양자 용덴의 죽음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상실이 그녀를 덮쳤습니다.

알렉산드라 데이비드-닐은 1969년 9월 8일, 백 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며 방대한 저작과 수천 통에 달하는 서신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그녀의 유해는 양자 용덴의 유해와 함께 그토록 사랑했던 갠지스강에 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