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매리언 라폴레트 주니어(Robert Marion La Follette Jr., 1895년 6월 14일 ~ 1953년 2월 24일)는 '영 밥(Young Bob)'이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이다. 위스콘신주를 기반으로 활동한 공화당 소속 정치가로, 1925년부터 1947년까지 미국 연방 상원의원으로 재직했다. 위스콘신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을 모두 지낸 진보주의 정치인 로버트 M. 라폴레트 시니어(Sr.)의 아들이기도 하다.
매디슨에서 시작된 삶
라폴레트 주니어는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태어났다. 그는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 진학해 명예 학회인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학생 신문 《데일리 카디널(The Daily Cardinal)》의 편집자로 활동하며 필력을 다듬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미국 육군에 입대해 군복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정치 입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쟁이 끝난 후 고향 위스콘신으로 돌아온 라폴레트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1922년 위스콘신 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어 한 차례 임기를 수행했고, 1925년에는 미국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며 국정 무대에 나섰다. 아버지가 일궈 놓은 진보주의 정치 유산을 한 세대 뒤에서 이어받은 셈이다.
상원을 대표하는 진보주의자
라폴레트 주니어는 재직 시절 미국 진보주의 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그는 전력 등 공공 유틸리티의 공공 소유를 지지했으며, 사회복지 제도의 확충과 노동조합의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다. 대공황 시기에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협력하는 등 당색을 넘나들며 개혁 입법을 추진했다.
외교 문제에서는 비교적 고립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1930년대 미국이 해외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했으며, 1941년 무기대여법(Lend-Lease Act)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소수의 상원의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다만 진주만 공습 이후에는 전쟁 수행에 힘을 실어주었다.
예기치 못한 정치적 좌초
1946년, 라폴레트의 정치 인생은 급격한 전환점을 맞는다. 같은 해 치러진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조지프 매카시에게 패배하면서 연임에 실패한 것이다. 그는 임기 종료를 앞두고 12월에 상원의원직을 사임했으며, 이후 변호사 활동에 몸담았다. 1953년 2월 24일, 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글로 남긴 흔적
정치 활동 외에도 라폴레트는 저술과 언론 분야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는 《더 네이션(The Nation)》, 《더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 등 저명 간행물에 글을 기고하며 진보주의 사상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역사가 남긴 평가
오늘날 라폴레트 주니어는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진보주의 상원의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파이팅 밥(Fighting Bob)'이라 불린 아버지가 연 진보주의의 길을 끝까지 지켜냈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유산은 위스콘신을 넘어 미국 복지 국가 건설의 과정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