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은 사실주의적 묘사, 날카로운 사회 비판, 신랄한 아이러니로 유명한 영국의 여류 작가입니다. 그녀의 작품은 수차례 영화로 각색될 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왔으며, 지금도 가장 널리 읽히는 영국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가족을 위한 첫 번째 작품들

캐샌드라 오스틴(Cassandra Austen)과 윌리엄 조지 오스틴(William George Austen)의 딸로 태어난 제인은 1775년 12월 16일, 잉글랜드 상류 사회인 젠트리(gentry)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에게는 훗날 가장 친밀한 조언자이자 벗이 되는 언니 캐샌드라와 여섯 명의 오빠가 있었습니다.
1783년, 제인과 언니 캐샌드라 엘리자베스는 옥스퍼드로 보내져 앤 코울리 부인(Mrs Ann Cawley) 밑에서 교육을 받았고, 1785년에는 기숙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두 자매는 프랑스어, 철자법, 바느질과 자수, 무용, 음악 등을 배웠으나 1786년, 부모님이 학비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학업을 마치게 됩니다. 이후 제인은 폭넓은 독서를 통해 스스로 교육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일찍이 1787년부터 제인은 시, 소설, 희곡을 집필하기 시작해 가족들과 작품을 공유했습니다. 특히 당대 유행하던 감상적인 연애소설을 풍자한 《러브 앤 프렌드십(Love and Freindship)》을 쓰기도 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제인은 집에 머무르며 당대 신분에 걸맞은 여성의 일상적인 활동에 종사하는 한편 꾸준히 글을 쓰고, 가족들에게 소설을 읽어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1793년부터는 더욱 복잡하고 방대한 작품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여성과 결혼
제인 오스틴이 20세였을 무렵, 그녀는 이웃에 사는 청년 토머스 르프로이(Thomas Lefroy)와 친분을 맺었지만, 양가는 빈궁한 두 가문 간의 결혼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1802년 12월,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청년에게서 인생에서 유일한 청혼을 받았습니다. 유리한 혼처였음에도 그녀는 거절을 택했습니다. 훗날 그녀는 조카에게 보낸 편지에서 또 다른 구혼 건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부디 더 이상 마음을 주지 말기를, 그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기를 부탁한다. 애정 없는 결혼보다는 어떤 것이든 차라리 택하거나 견디는 편이 낫다."
1805년 아버지 윌리엄 조지 오스틴이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와 딸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오빠 한 명이 작은 오두막을 내주어 가족은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제인은 매일 조용히 글을 쓰는 일을 이어갔고, 네 권의 장편소설을 잇달아 출간했습니다. 1811년 발표된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은 호평을 받았고, 1813년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은 즉각적인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어 1814년 《맨스필드 파크(Mansfield Park)》와 1815년 《엠마(Emma)》가 출간되었습니다. 그녀의 소설은 당대 여성이 경제적으로 결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예리하게 조명합니다.
1816년경부터 제인 오스틴의 건강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817년 7월,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41세였습니다. 그녀는 윈체스터 대성당(Winchester Cathedral)에 안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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