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서문: 18세기 인도의 위대한 군주, 사와이 자이 싱 2세

서문: 18세기 인도의 위대한 군주, 사와이 자이 싱 2세

서문: 18세기 인도의 위대한 군주, 사와이 자이 싱 2세

인도 라자스탄 지방에는 시대에 따라 이름이 바뀌어 온 왕국이 있다. 초기에는 '둔다르(Dhundhar)', 중기에는 '암베르(Amber)', 후기에는 '자이푸르(Jaipur)'로 불린 이 왕국을 다스린 세 명의 군주가 모두 '자이 싱(Jai Singh)'이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었다.

미르자 라자 자이 싱 1세 (1621~1668)

자이 싱 1세는 1621년부터 1668년까지 암베르의 국왕이었다. 그는 무굴 제국의 세 황제, 즉 잘랑기르(재위 1605~1627), 샤 자한(재위 1627~1658), 아우랑제브(재위 1658~1707)를 차례로 섬겼다. 1636년 샤 자한은 그에게 '미르자 라자(Mirza Raja)'라는 칭호를 내렸고, 이로써 그는 인도 역사에서 '미르자 라자 자이 싱'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사와이 자이 싱 2세 (1700~1743)

자이 싱 2세는 1700년부터 1743년까지 암베르의 국왕으로 재위했다. 그는 아우랑제브, 바하두르 샤, 파루크시야르, 무함마드 샤 등 네 명의 무굴 황제 치세 내내 북인도 정치의 핵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자이 싱 3세 (1819~1835)

자이 싱 3세는 1819년 4월 25일부터 1835년 2월 6일까지 자이푸르의 국왕이었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는 눈을 뜨자마자 자이푸르의 왕위에 올랐으나 불과 14세에 요절했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자이푸르는 동인도회사와 맺은 종속 협력 조약에 따라 통치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 사와이 자이 싱 2세

이 책은 이 가운데 특히 사와이 라자 자이 싱 2세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사와이 자이 싱은 18세기 전반 북인도의 군주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았으며, 가장 총명하고 원대한 안목과 영향력을 지닌 왕이었다. 두드하드 지역에 자리한 광대한 암베르 번왕국의 위대한 왕들 중에서도 그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18세기 인도의 정치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무굴 제국, 마라타, 자트족이라는 거대 세력의 압박 속에서 번왕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이 싱처럼 넓은 도량과 뛰어난 외교 감각을 지닌 군주가 절실했다.

아우랑제브의 그림자 아래에서

사와이 자이 싱이 태어났을 당시 암베르는 무굴 황제들의 외교적 술책에 시달리며 가난의 절정에 있었다. 아우랑제브의 위험한 야망은 조드푸르, 자이푸르, 비카네르, 메와르 등 힌두 번왕국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펀자브의 시크교도, 남부의 마라타족, 극남의 시아파 왕국들까지 집어삼키려 했다. 아우랑제브에게 수니파가 아닌 모든 왕과 모든 사람은 적이었다. 그는 평생 이단(kufr)을 근절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고 일컬어지지만, 설령 자신의 자식들이라 해도 피 한 방울 남김없이 갈망했다. 결국 아우랑제브의 피비린내 나는 야욕은 인도 전역에 강물처럼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

여덟 살 왕자, 열두 살의 왕

아우랑제브는 어린 자이 싱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차례 계략을 꾸몄다. 1696년, 여덟 살에 불과한 왕자 자이 싱은 처음으로 아우랑제브 앞에 알현되었다. 아우랑제브는 곧바로 그의 아버지 비샨 싱에게 자이 싱을 왕실에 바치라고 명령했다.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자이 싱은 남부 전선에 투입되었고, 2년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겨우 열두 살에 광대한 암베르 번왕국의 통치를 짊어져야 했다.

이후 무려 4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 위대한 왕은 무굴 궁정의 음모, 마라타 지도자들의 약탈, 자트족 지도자들의 야망, 인접 라지푸트 번왕국들의 배신에 끊임없이 맞서야 했다. 동시에 힌두 신민과 문화, 과학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재물과 시간, 자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평화의 사도였던 왕

사와이 라자 자이 싱 2세는 무예와 학문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백성을 자식처럼 아꼈고, 피난민에게 두려움 없는 안식처를 베푸는 군주였다. 그는 비슈누 신의 독실한 신도였으며 님바르카(Nimbarka) 종파로부터 입문 의식을 받았다. 시대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렸지만, 본질적으로 그는 전쟁의 사도가 아니라 평화의 사도였다. 아마도 아우랑제브는 자이 싱이 여덟 살이던 때 이미 이러한 다재다능함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전쟁터로 보내 이단을 근절하게 하려 했으리라. 그러나 자이 싱은 그 시련을 모두 헤쳐 나가며 오랫동안 인도의 대지를 위해 봉사했다.

맺으며

이 책은 인도 사회가 오늘날까지 그 발자취를 따라 나아가고 있는 위대한 왕, 사와이 자이 싱에 대한 소박한 헌사이다. 독자 여러분께서 이 책을 흥미롭게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 슈밤(Shubham).

— 모한랄 굽타(Mohanlal Gupta) 박사
63, 사르다르 클럽 요자나(Sardar Club Yojna)
공군 지구, 조드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