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리들리(Nicholas Ridley)
니콜라스 리들리(약 1500년~1555년 10월 16일)는 잉글랜드의 성직자이자 개신교 종교개혁가였습니다. 헨리 8세와 에드워드 6세의 궁정 사제로 활동한 그는 로체스터 주교(1547~1550)와 런던 주교(1550~1553)를 차례로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으로 회귀하던 메리 1세의 탄악, 이른바 '메리언 박해' 기간에 화형대에 올라 순교했습니다.
리들리는 토머스 크랜머, 휴 라티머, 니컬러스 섹스턴 등이 속한 학자 그룹인 '옥스퍼드 종교개혁가(Oxford Reformers)'의 일원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들은 헨리 8세와 에드워드 6세 치세 동안 잉글랜드 국교회 안에서 개신교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휴 라티머(Hugh Latimer)
휴 라티머(약 1485년~1555년 10월 16일)는 잉글랜드 국교회의 주교이자 신학자, 개신교 종교개혁가였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종교개혁을 옹호하던 강렬한 설교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라티머는 1535년부터 1539년까지 우스터 주교로 재직했습니다. 에드워드 6세 치세에는 1547년 런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메리 여왕과 스페인의 필립 사이의 가톨릭 결혼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1553년 10월 13일 주교직을 박탈당했습니다. 이후 1554년 개신교 탄압 과정에서 체포되었고, 마침내 1555년 메리언 박해 도중 옥스퍼드에서 니콜라스 리들리와 함께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두 사람이 남긴 유산
리들리와 라티머는 1555년 10월 16일 같은 날 옥스퍼드에서 운명을 함께했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라티머는 형장에서 리들리에게 "용기를 내십시오, 리들리 선생.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잉글랜드에 결코 꺼지지 않을 촛불을 밝히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 문구는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정신을 상징하는 말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으며, 두 사람은 잉글랜드 개신교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순교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