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관련 연습 문제
문제 1 · (Mackenzie)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을 섬멸한 흑사병, 농업 생산의 불안정한 균형으로 촉발된 농민 반란, 그리고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이 세 사건은 다음 중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요?
(a) 봉건·교회 중심 사회의 형성
(b) 중상주의 경제 체제의 위기
(c) 왕권을 잠식하며 귀족 세력의 강화
(d) 절대왕정 위기의 가속화
(e) 봉건제의 위기와 왕권의 공고화
문제 2 · (ENEM-MEC)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상당 부분을 섬멸했으며, 도시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당시 의학 지식만으로는 전염병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연대기 작가 아뇰로 디 투라(Agnolo di Tura)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사람들은 밤낮으로 수백 명씩 죽어갔고, 모두 흙으로 덮인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구덩이가 가득 차면 곧바로 새 구덩이를 팠습니다. 나는 내 다섯 아이들을 제 손으로 직접 장롱했습니다 (...)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 모두가 그것이 세상의 끝이라고 여겼습니다."
— 아뇰로 디 투라, 『시에나의 페스트: 이탈리아 연대기』. In: William M. Bowsky, 『흑사병: 역사의 전환점인가?』, New York: HRW, 1971 (일부 발췌·수정)
14세기 유럽을 황폐화시킨 흑사병의 생존자였던 아뇰로 디 투라의 증언이 보여주는 바는?
(a) 흑사병의 참화가 '종말'과 결부되어 인식되었다
(b) 교회가 의학 지식을 보급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잠재우고자 했다
(c) 피해자가 적고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사망자 수가 주는 충격은 크지 않았다
(d) 페스트 창궐 이전 시기에 이미 유럽에서 상당한 인구 감소가 일어났다
(e) 생존자가 겪은 비극은 시신이 매장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문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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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이라 불리는 대유행병은 14세기 동안 유럽을 유린했습니다. 중세에 관한 방대한 문헌 중 상당수는 서양을 깊이 뒤흔들고 오늘날까지 남은 상징과 표상을 낳은 이 끔찍한 사건에 불과 몇 페이지를 할애할 뿐입니다. 연대기 작가들에 따르면, 1347~1350년경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없앤 이 질병만큼 비참한 사건은 드물었습니다. 1300년부터 17세기까지의 시기는 인구 이동과 상업 활동으로 인해 아시아발 질병이 유럽에 유입되며 특징지어집니다. 페스트 병원균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는 중국 남서부의 원산지를 떠나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대상(隊商) 무역로를 따라 이동했고, 지중해의 항구들을 통해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SANTOS, Ricardo Augusto dos. "Carnival, plague and 'Spanish'". Hist. Cienc. Saúde-Manguinhos [online]. 2006, vol. 13, n.1, pp.129-158.)
위 글의 정보를 바탕으로, 흑사병이 유럽에 도달한 경로로 옳은 것은?
(a) 원자재와 무역로를 차지하려고 유럽 인구를 몰살시키려 한 중국인의 도래
(b) 각종 질병의 온상이었던 지중해의 항구들
(c) 페스트 병원균 Yersinia pestis가 이미 존재하던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출발한 대상 무역로
(d) 고대부터 유럽으로 이주해 왔다가 페스트의 책임을 뒤집어씌워진 유태인
(e) 유럽과 아시아의 인구 조절이 목적인 아시아발 생물학 무기
문제 4
흑사병이라 불린 대유행병은 14세기에 유럽 인구를 유린했고, 같은 시기에 일어난 대규모 농민 반란과 함께 이른바 '14세기의 위기'라는 국면을 형성했습니다. 흑사병에 대한 설명으로 잘못된 것은?
(a) 페스트의 생물학적 병원체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 간균으로, 처음에는 쥐와 쥐벼룩을 통해 인간에게 전파되었다
(b) 페스트는 유럽에서 엄청난 사망자를 냈으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섬멸했다
(c) 당시 과학 지식이 아직 정밀하게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페스트의 원인은 생물학적으로 설명되지 못했다
(d) 페스트가 '흑사(黑死)'라고 불린 이유는 14세기에 아프리카 흑인들이 유럽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퍼졌기 때문이다
(e) 페스트 확산의 책임이 유태인에게 돌려졌다
정답 및 해설
문제 1 정답: (E)
농민 반란과 백년전쟁, 그리고 흑사병은 이른바 유럽의 14세기 위기, 즉 '중세 후기의 위기'라 불리는 국면을 이룹니다. 이 시기는 봉건제의 위기와 왕권의 공고화로 특징지어지는데, 바로 이것이 정답인 (E)가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중상주의와 절대왕정은 16세기 이후의 현상이므로 (B)와 (D)는 틀렸습니다. 또한 14세기 말부터 왕권은 귀족 세력과 함께 성장했으며, 이 성장은 기존의 봉건적·교회적 질서 위에 군림하게 됩니다. 따라서 (C)와 (A) 역시 틀렸습니다.
문제 2 정답: (A)
텍스트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탈리아 연대기 작가 아뇰로 디 투라는 흑사병이라는 재앙적 사건과 '세상의 끝'을 직접 연결하고 있으며, 그 근거로 막대한 사망자 수를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A)가 정답입니다. (D)는 유럽의 인구 감소가 페스트 이전 시기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페스트가 주는 끔찍한 인상은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사망자 수에서 비롯되었으므로 (C)도 틀렸습니다. 당시 의학 지식으로는 교회가 노력한다 해도 페스트에 맞설 방법이 없었고, 사망자가 워낙 많아 시신은 개별 장례 대신 집단 매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생존자의 최대 비극은 아니었습니다. 진짜 비극은 페스트가 앞으로 몇 명의 목숨을 더 거둘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B)와 (E)는 기각됩니다.
문제 3 정답: (C)
본문은 흑사병 병원균이 유럽으로 유입된 경로를 설명합니다. 이 경로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대상(隊商) 무역로와 동일했습니다. 중세 세계에서 질병은 주로 배와 항구를 통해 인구 이동을 따라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C)가 정답이며, (B)는 페스트가 항구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기에 틀렸습니다. 중국인이든 유태인이든 특정 민족이 페스트나 역병의 원흉이 된 적은 없습니다. 이런 주장은 대개 박해의 대상을 만들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되는데, 외래 민족이 바로 그러한 희생양의 전형입니다((A)와 (D) 오답). 중세 세계에서 질병이 생물학 무기로 사용된 적은 없으며, 당시에는 그러한 무기 개념 자체가 없었고 인구 조절이 목표였을 리도 없습니다. 따라서 (E)도 틀렸습니다.
문제 4 정답: (D)
14세기에 아프리카 흑인이 유럽으로 대거 이주한 적은 없습니다. 설령 그랬다 해도,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 간균이 일으키는 페스트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D)가 오답인 이유는 14세기라는 시대적 맥락과 실질적 연관이 전혀 없는 정보를 담고 있는 유일한 선택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