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대해 갖고 있던 입장이 바뀌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며 중립을 고수하던 그가 결국 참전을 결심하게 된 배경을 살펴봅니다.
1.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
1915년 5월, 독일 U보트(잠수함)가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격침하여 미국인 128명을 포함해 총 1,19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큰 충격과 분노를 일으켰고, 유럽 전쟁 개입을 지지하는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2. 서섹스 서약(Sussex Pledge) 위반
루시타니아호 사건 이후 독일은 무장하지 않거나 저항하지 않는 상선은 경고 없이 침몰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1916년 3월, 독일 잠수함이 프랑스 여객선 서섹스호를 공격해 승선하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서섹스 서약의 명백한 위반으로, 미국의 중립 노선에 균열을 가져왔습니다.
3. 짐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
1917년 1월, 영국은 독일 외무차관 아서 짐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에게 보낸 전보를 가로채 해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전보에는 독일과 멕시코가 동맹을 맺고, 멕시코가 미국과 전쟁을 벌일 경우 독일이 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 등 과거에 상실한 영토 회복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인들은 크게 분노했고, 대독 선전포고에 대한 지지가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4. 무제한 잠수함 작전 재개
1917년 2월,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재개하여 영국을 굶주려 항복시키려는 전략 아래 경고 없이 상선들을 격침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이러한 도발 강화는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고, 미국을 참전의 문턱까지 몰아넣었습니다.
5. 여론의 변화
미국 내 여론은 한동안 점진적으로 개입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전쟁의 잔혹함에 충격을 받았고, 연합국이 독일을 물리치도록 돕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고 느꼈습니다. 루시타니아호 침몰, 서섹스 서약 위반, 짐머만 전보, 무제한 잠수함 작전 등 일련의 사건들이 겹치면서 개입 지지 여론은 더욱 강해졌고, 결국 1917년 4월 윌슨 대통령의 참전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