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70년 넘게 이어져 온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오래된 국제 분쟁 중 하나입니다. 이 글에서는 분쟁의 흐름을 바꾼 핵심 사건 10가지를 연대순으로 살펴봅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첫 전쟁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를 각각 수립하자는 내용의 결의안 제181호를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결의에 반발한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제1차 중동전쟁(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했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이스라엘은 아랍 인접국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전쟁은 휴전으로 막을 내렸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약 3분의 2를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지역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아랍인 다수는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
단 6일 만에 승부가 난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시나이반도를 점령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영토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군사적 점령 하에 놓이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점령 문제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유대교 최대 성일인 욤 키푸르를 기해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에 기습 공격을 감행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은 휴전으로 종결되었지만, 이스라엘은 점령지에 대한 통제권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캠프데이비드 협정에 서명했고, 이는 두 나라 간 평화조약 체결로 이어졌습니다. 아랍 국가가 이스라엘과 공식적으로 화해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중동 외교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87년: 제1차 인티파다
점령지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점령에 맞서 대규모 민중 봉기, 즉 제1차 인티파다(Intifada)를 일으켰습니다. 돌 던지기 시위 등 비무장 저항이 특징적인 이 봉기는 국제사회의 큰 주목을 받으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세계 무대에 다시 올려놓았습니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된 비밀 협상 끝에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를 통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수립되며 평화 공존의 가능성이 열린 듯 보였습니다.
2000년: 제2차 인티파다
오슬로 협정 이후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또 다른 대규모 봉기인 제2차 인티파다가 발생했습니다. 이전과 달리 무력 충돌이 크게 격화되며 양측 모두 막대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2005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정착촌과 군대를 철수했지만, 여전히 가자지구의 영공·해안 및 국경을 통제하며 사실상의 봉쇄를 유지했습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대한 통제도 계속되었습니다.
2014년: 가자 전쟁
가자지구를 장악한 이슬람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에 가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은 휴전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가자지구는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봉쇄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2021년: 분쟁 재격화
예루살렘을 둘러싼 긴장 고조 속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충돌과 폭력 사태가 확산되면서 분쟁은 다시 한번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은 여러 차례의 전쟁과 협정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