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년 10월 21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는 스페인 남부 카디스 근해 트라팔가르 곶 앞바다에서 빌뇌브 제독이 지휘하는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했습니다. 프랑스 함선 18척과 스페인 함선 15척이 결집한 연합함대에 맞선 영국 함선은 27척이었습니다. 이 트라팔가르 해전에서의 승리는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 계획을 좌초시켰고, 황제를 패퇴시키려는 영국의 결의와 함께 영국의 해양 지배력을 확고히 다지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트라팔가르 해전의 배경
프랑스 제1제국에 맞서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사이에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었습니다. 영국 침공을 준비하던 나폴레옹은 불로뉴 진영에 20만 명의 병력을 집결시키고 7,000척의 수송 바지선을 건조했습니다. 그러나 침공에 앞서 영국 함대를 유인해 무력화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빌뇌브 중장이 지휘하는 프랑스 최대 함대는 넬슨 제독과 그의 부관 콜링우드에 의해 스페인 카디스 항구에서 봉쇄당한 상태였습니다. 영국 침공 계획을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 나폴레옹은, 로슈포르 함대를 차단하지 못한 빌뇌브에게 지중해로 진출해 나폴리를 공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빌뇌브는 넬슨 앞에서 자신의 열세를 잘 알고 있었지만 명령에 복종했습니다. 출항 이틀째 되던 날인 10월 21일 새벽, 지원을 받아 출항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는 영국 함대에 요격당했습니다. 33척의 함선으로 전열(戰列)을 이룬 연합함대는 넬슨의 공격에 직면했습니다. 넬슨은 자신이 이끄는 27척의 함대를 두 개의 종대로 나누어 연합함대의 중앙과 후미를 분단하는 파격적인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이 전법 앞에 연합군은 33척 중 17척을 상실했고, 11월 4일에는 뒤마누아르와 함께 탈출했던 우익의 4척마저 차례로 영국군에 나포되었습니다.
영국 해양 패권을 확립한 승리
영국 함대의 손실은 약 1,500명의 사상자에 그쳤지만, 승리의 주역 넬슨 제독은 기함 '빅토리'호의 갑판 위에서 전사했습니다. 한편 연합군은 약 7,000명의 사상자와 20척의 함선을 잃었으며, 빌뇌브 제독은 기함 '뷩상퇴르'호에서 포로로 잡혔습니다. 불운한 프랑스 제독은 석방된 직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영국 침공 계획에 종지부를 찍은 영국의 승리는 한 세기 동안의 해양 패권을 영국에 보장해 주었습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루이 16세 치세에서 영광을 누렸던 프랑스 해군은 이후 다시는 명성을 되찾을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10월 21일은 19세기와 20세기 초 대영제국 전역에서 '트라팔가르 데이'로 기념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이 기념일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한편 '트라팔가르 쿠데타'라는 표현은 이 전투에서 넬슨이 구사한 예측 불가능한 혼란 전략을 가리키는 말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 Michèle Battesti, 『트라팔가르: 나폴레옹 해군 전략의 모호함(Trafalgar: les ambiguïtés de la stratégie navale de Napoléon)』, 2004.
- Anne Pons, 『나폴레옹에 맞선 넬슨: 아부키르에서 트라팔가르까지(Nelson contre Napoléon: d'Aboukir à Trafalgar)』, 페랭, 2005.
- Rémi Monaque, 『트라팔가르 해전(La bataille de Trafalgar)』, 탈랑디에, 2005.
- Alain Pigeard, 『나폴레옹 전투 사전 1796-1815(Dictionnaire des batailles de Napoléon: 1796-1815)』, 탈랑디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