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숙제 타임: 소티리스 치오드라스는 코르셋을 입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가 아는 '일상'의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이 기묘한 시대에, 소티리스 치오드라스(Sotiris Tsiodras)가 셔츠 안에 무엇을 입었는지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으러 갔다가 그 모습이 드러나면서 말이죠.

코르셋, 언제나 유행하던 아이템

우선 자존심 있는 패션 피플이라면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코르셋은 지난해에도 유행한 아이템이었다는 점입니다. 틴 보그(Teen Vogue)도 이 주제를 상세히 다룬 바 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붙인 이름인 코르셋(corset)은 몸통을 '원하는' 형태로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의복입니다. 즉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고 가슴을 받쳐 올려, 어깨부터 엉덩이까지 상반신이 'S'자 곡선을 그리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죠. 당시 여성성의 정점으로 여겨지던 실루엣입니다. 물론 이야기는 여성의 경우에 한합니다.

남성도 코르셋을 입었다?

18~19세기의 남성들 역시 상체(특히 복부)를 가다듬기 위해 코르셋을 착용했습니다. 당시에는 남성에게도 잘록한 허리가 필수였거든요.

참고로 코르셋은 16세기 말부터 1914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1914년에는 허리를 꽉 조이는 방식 대신 엉덩이 쪽으로 강조점을 옮긴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했는데, 그때쯤이면 '여성의 몸이 전봇대를 닮았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숙제 타임: 소티리스 치오드라스는 코르셋을 입지 않았다

코르셋이 초래한 건강 문제

수시간씩 이어진 압박은 당연히 여러 건강 문제를 낳았습니다. 첫째는 말 그대로 '숨을 못 쉬게 만드는' 것이었고, 둘째는 장기가 제자리에서 밀려나는 현상이었습니다. 셋째는 불임과 관련된 것으로, 만성적인 착용이 자궁내막증(정상적으로는 자궁 내부를 덮는 자궁내막 조직이 난소, 나팔관 등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 자라는 질환)을 유발할 수 있었습니다. 1920년대부터는 문자 그대로이자 비유적으로 끈이 느슨해졌고, 'S'자 대신 곧은 실루엣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습니다.

'코르셋'이라는 단어의 유래

'코르셋'이라는 용어의 뿌리는 프랑스어로 '몸'을 뜻하는 'cors'입니다.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 'corpus(몸)'에서 왔으며, 축소 접미사가 붙어 '작은 몸'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1828년부터 프랑스 밖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처음 등장한 곳은 영국의 패션 월간지 '레이디스 매거진(Ladies Magazine)'으로, '프랑스 사람들이 코르셋이라 부르는 누비 세공 조끼'라는 설명과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카시코르셋'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카시코르셋(cache-corset)은 원래 코르셋 위에, 겉옷 아래에 입어 겉옷이 속옷과 마찰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의복입니다. 면이나 리넨으로 제작되었으며 자수, 레이스, 단추 등으로 장식되기도 했죠.

그러다 인류가 더 이상 생명 기관과 갈비뼈를 조일 필요가 사라지자, '코르셋'이라는 이름은 척추측만증 등 척추 교정이 필요한 아이들이 착용하는 보조기구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한편 몸에 딱 붙고 가슴이 드러나는 남성용 민소매 속옷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카시코르셋'이라 부르는 이 옷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탱크 톱(tank top)'이라 불립니다. 그것을 카시코르셋이라 부르는 곳은 그리스뿐인데, '배운 대로 가르친다'는 고집스러운 원칙과 관련이 깊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즉 오늘날처럼 정보를 검증할 수 없던 때에 이미 정착해 버린 명칭이었죠.

따라서 정확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라면, 치오드라스가 카시코르셋을 입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탱크 톱'이라는 용어를 쓰면 그의 옷차림에 한마디 해야 직성이 풀리던 사람들의 서사는 재미없어지겠지만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아래 내용도 기억해 두세요.

  • ✎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호주, 가나, 나이지리아, 홍콩, 싱가포르,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하와이 일부, 프랑스어권 벨기에에서는 '싱글렛(singlet)'이라 불립니다.
  • ✎ 탱크 톱의 '본산'이라 불리는 이름은 '마르셀(marcel)'로, 이 종류의 의류를 대량 생산한 최초의 사업가 마르셀 아이젠베르크(Marcel Eisenberg)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 ✎ 러시아에서는 '마이카(mayka)'로 알려져 있습니다.
  • ✎ 필리핀에서는 '산도(sando)'라 부릅니다.
  • ✎ 인도 대부분 지역(땀을 흡수해 블라우스나 셔츠에 땀이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입습니다)에서는 '바니안(banian)'이라 불립니다.

'와이프비터'라는 오명

탱크 톱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사실—다시 강조하지만 이 옷은 카시코르셋이 아닙니다—은 대서양 건너편에서 한동안 '와이프비터(wifebeater, 아내 구타자)'라고 불렸다는 점입니다. 1947년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제임스 하트포드 주니어(James Hartford Jr.)가 착용 중이던 옷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신문에 실린 사진 속 그림은 더러워진 민소매 속옷 차림이었죠. '와이프비터'라는 명칭이 좋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탱크 톱'이라는 이름이 선호되었고,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가 그 인기를 굳혔습니다.

숙제 타임: 소티리스 치오드라스는 코르셋을 입지 않았다

탱크 톱의 탄생 이야기

덧붙이자면, 이 이야기는 시카고에서 양말 사업을 운영하던 사무엘 T. 쿠퍼(Samuel T. Cooper)로부터 시작됩니다. 1935년 1월의 일이었죠. 멜 매거진(Mel Magazine)에 따르면, 그때까지 남성 속옷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감싸는 운동용 저지, 레깅스, 일체형 작업복이 전부였습니다. 쿠퍼는 세계에 브리프(그가 '조키(jockeys)'라 불렀습니다)를 선물했고, 석 달 만에 3만 켤레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후 그는 상체를 위해서도 가볍고 민소매인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붙인 이름은 'A셔츠(A-shirt)', A는 애슬레틱(Athletic)의 약자였습니다. 곧 헤인즈(Hanes)와 프루트 오브 더 룸(Fruit of the Loom) 같은 브랜드가 뒤를 이었고, 이들의 주된 목표는 땀이 겉옷에 배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