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그람 전투(Bataille de Wagram)는 1809년 7월 6일 비엔나 북동쪽에서 벌어진 전투로, 나폴레옹 1세가 오스트리아군을 상대로 거둔 마지막 대승이다. 이 승리로 오스트리아 원정은 종식되었고, 나폴레옹은 1792년 이후 프랑스에 맞서 결성된 다섯 번째 유럽 연합군을 와해하는 데 성공했다. 5월 13일 비엔나를 탈환한 대육군은 곧이어 5월 21일부터 도나우 강변의 에슬링에서 이틀에 걸친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22일 패배한 프랑스군은 로바우 섬으로 후퇴하여 재도하를 준비해야 했다.
와그람 전투의 배경과 양군의 전력
1805년 프레스부르크 조약으로 전쟁에서 물러났던 오스트리아는 1809년 4월 나폴레옹 1세에 대한 적대 행위를 재개하며 군대를 재편성했다. 프랑스 황제는 1809년 5월 13일 비엔나를 탈환했으나, 도나우 강 도하를 시도하던 5월 21~22일 에슬링 전투에서 패배를 맛보았다. 와그람에 재도전한 프랑스군은 병력 188,000명과 포 488문을 보유했으며, 우디노, 다부, 마세나, 베르나도트 원수가 지휘부를 구성했다.
카를 대공이 지휘하는 오스트리아군은 이에 맞서 병력 132,000명과 포 446문을 배치했다. 승패의 관건은 도나우 강의 장악과 강 도하에 있었다. 프랑스군은 여러 차례 압도당할 위기에 처했고, 포병을 대규모로 운용하는 데 능한 나폴레옹은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베르나도트 원수와 그의 색슨군이 오스트리아군에게 패배해 내준 진지를 되찾은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위대한 승리
그러나 전투가 끝나갈 무렵에는 프랑스군의 상대적인 약화가 분명히 드러났다. 일부 장군들의 지연 행동과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징집병들의 불안정성에 시달린 대육군이 이 불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나폴레옹의 군사적 천재성 덕분이었다. 오스트리아는 1809년 10월 14일 전쟁을 종결짓는 비엔나 조약을 체결하며 배상금 7,500만 프랑을 지불하고, 일리리아를 프랑스에, 갈리치아의 일부를 러시아에 할양하는 등 상대적으로 온건한 강화 조건을 받아들였다. 나폴레옹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리 루이즈와 재혼한 것 역시 이 승리가 남긴 결과 가운데 하나였다.
참고문헌
- Wagram, 1809년 7월 5~6일: 고된 끝에 얻은 승리, 프레데리크 노를레(Frédéric Naulet), 나폴레옹 1세 출판사, 2008.
- Wagram(1809년 7월 5~6일): 도나우 강변에서 울려 퍼진 대포 소리, 프레데리크 노를레(Frédéric Naulet), 이코노미카, 2009.
- 알랭 피자르(Alain Pigeard), 『나폴레옹 전투 사전: 1796-1815』, 탈랑디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