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여성이 왕위를 물려받은 유일한 민족, 피크트족의 모계 계승 비밀

장자 상속이 당연했던 시대, 놀라운 예외가 있었다

역사 교과서는 우리에게 남성 중심의 왕위 계승과 장자 상속(첫째 아들이 재산과 지위를 물려받는 제도)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인 일본 황실에서는 오직 남성만이 왕위를 이을 수 있으며, 모나코 공국 역시 장자 상속이 의무화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여성이 우선권을 가졌던 경우도 있었다. 바로 위험하고 기묘한 민족, 피크트족(Picts)의 땅에서였다.

피크트족은 어떤 존재였을까?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크트족은 낯선 이름이다. 있다 해도 역사 교과서보다는 할리우드 영화의 배경이나 중세 브리튼을 무대로 한 소설 속 구석에서나 등장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얼굴에 파란색이나 남색 물감으로 전쟁의 상징을 문신하듯 새긴 것, 손에 든 검(그들의 야금 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거의 알몸으로 전장에 나섰다는 이야기와 격렬한 전투 함성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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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피크트 전사.

또 다른 흔한 이미지도 있다. 짙은 숲속을 겁먹은 로마 군단병들이 행군하는데, 갑자기 안개 속에서 무시무시한 피크트족이 나타나 병력의 절반을 몰살시키고는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장면이다. 물론 이것은 할리우드식 과장이 가미된 그림이다. 이제 진짜 이야기를 파헤쳐 보자.

피크트족은 어디에서 왔는가?

피크트족이 실제로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대 학자들은 매우 제한적인 사료를 근거로 추측을 반복할 뿐이다. 그들이 정확히 언제 브리튼 섬에 정착했는지, 어디에서 건너왔는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서기 1세기 후반의 것이다.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방벽 역시 로마의 영토를 피크트족의 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세워진 것이었다.

로마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는 저서 『로마사』에서 칼레도니아인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전하는데, 역사학자들은 피크트족이 바로 이 칼레도니아인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로마 군단병들이 얼굴에 색을 칠하고 몸에 무늬를 그린 칼레도니아 전사들을 picti(라틴어로 '칠해진 자들')라고 부르면서, 피크트족이라는 이름이 사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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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트족은 로마인들에게 그만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약 120km에 달하는 방벽을 축조해 이 호전적인 부족과 정복한 브리튼을 격리시켰다. 그림은 존 클레이턴이 그린 하드리아누스 방벽 건축 장면이다.(출처: 퍼블릭 도메인)

디오가 전한 이 신비로운 민족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앞서 언급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칼레도니아인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알 수 있다. 몸에 무늬를 칠하고 옷을 거의 입지 않는 풍습, 주로 검과 작은 방패, 창으로 이루어진 무기 체계, 투구와 갑옷이 없다는 점, 전차를 활용한 전투 방식, 빠른 기습과 똑같이 빠른 (위장) 후퇴를 숲과 늪지로 이어가는 전술, 도시가 없다는 점, 목축과 수렵이 식량의 기반이라는 점(강과 바다에 물고기가 풍부했음에도 어업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

디오가 언급한 특징들은 개별적으로 혹은 몇 가지씩은 다른 민족에서도 발견된다. 피크트족이 특별했던 결정적 이유는 이 모든 특징을 한꺼번에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음에 소개할 독특한 왕위 계승 방식 때문이다.

"어머니만이 항상 확실하다"

아주 먼 옛날 피크트족의 땅에는 일부다처제가 성행했다. 당시에는 합법적이었고 또 즐겨 행해지는 풍습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정절은 낡은 미덕이 되었고, 친아버지를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영리한 피크트족은 이 문제를 해결할 묘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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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트족은 친아버지 확인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출처: 퍼블릭 도메인)

매번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느라 고생하는 대신, 그들은 모계제(母系制)에 집중하기로 했다. 즉 모계 혈통을 따라 상속하고, 자손을 소위 '어머니의 집단'에 속하게 하는 방식이다. 피크트족이 라틴어 법언 mater semper certa est('어머니는 언제나 확실하다')을 알았을 리 없지만, 그들은 사실상 이 원칙을 자신들의 제도에 적용했고, 여성에게 통치권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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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니니아노의 선교 활동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에는 일부다처제를 포기해야 했다. 경건한 기독교인이 여러 화덕에서 빵을 얻는 것이 어찌 합당하겠는가? 어쨌든 이 시점부터는 앞서 말한 라틴어 법언을 온전히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반부는 pater est, quem nuptiae demonstrant, 즉 '아버지란 결혼이 지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피크트족은 여전히 옛 관습을 따랐다.

그래서 피크트 통치자의 자매와 딸들의 결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여성들은 결혼을 통해 왕위 계승권을 외국 궁정으로 전달했다. 이론적으로라면 피크트 공주와 결혼한 여러 군주들이 피크트 지배권을 주장할 수 있었고, 실제로도 외지 출신 인물이 피크트의 왕좌에 앉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계 중심의 가치관으로 자란 많은 이들에게 여계 상속 제도는 받아들이기 힘든 쓴약이었으리라. 그럼에도 피크트의 역사 전체를 살펴보면 아버지에서 아들로 왕위가 넘어간 경우는 단 두 번뿐이며, 둘 다 국운이 기울던 쇠퇴기에 일어난 일이다. 이야말로 전통에 대한 집착이라 불릴 만하다!

참고 자료

이 글은 다음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Jerzy Strzelczyk, 『Forgotten Nations of Europe』(잊혀진 유럽의 민족들), Ossolineum, Wrocław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