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로빙거와 카롤링거는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두 왕조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역사와 왕권의 흐름을 만들어갔습니다. 클로비스와 샤를마뉴 같은 위대한 군주를 배출한 이들은 비록 많은 차이점이 있었지만, 한 왕조에서 다른 왕조로 넘어가는 과정은 유럽 중세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메로빙거에서 카롤링거로 이어진 격변의 시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메로빙거 왕조의 탄생
클로비스의 신화적 조상인 메로베우스가 즉위하면서 메로빙거 왕조가 문을 열었습니다. 살리어 프랑크족의 두 번째 왕인 그에게 '신화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여왕과 신(神)의 결합으로 태어났다는 전설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전설만이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아닙니다. 실제로 메로베우스의 존재 자체, 나아가 그가 메로빙거 왕조의 시조인지조차 입증된 바 없습니다.
16세기의 대표적인 연대기 작가인 투르의 그레고리우스는 "프랑크족의 첫 번째 왕은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정작 자신도 답을 모른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메로빙거 왕조가 실존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오늘날에도 메로빙거족의 기원은 베일에 싸여 있으며, 이처럼 강력한 군주제가 갑자기 등장하게 된 배경을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메로빙거족은 로마 제국의 쇠퇴를 틈타 갈리아로 진출했고, 이곳에 자신들의 왕정 체계를 세워 프랑스 왕국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한편, 메로빙거 왕조의 역사에는 빛나는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왕 중 한 명인 클로비스입니다. 힐데리크 1세의 아들인 그는 496년경 세례를 받은 것으로 특히 유명하며(학자에 따라 연대를 508년으로 보기도 합니다), 진정한 정복자다운 면모를 보이며 재위 기간 동안 프랑크족의 영토를 두 배 가까이 넓혔습니다. 클로비스 이후 메로빙거 왕의 목록은 매우 길게 이어졌지만, 그가 이룬 영광을 능가한 왕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메로빙거 왕조의 쇠퇴
메로빙거 왕조 시대에 프랑크 왕국은 서유럽 최강의 군사·정치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뛰어난 군사적 우위와 전쟁 기술 덕분에 메로빙거족은 빠르게 갈리아 대부분의 영토를 장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왕조는 단 3세기 만에 백성들의 외면 속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귀족들이 반기를 들면서, 강대한 왕국을 통치하던 군주들은 '게으른 왕(rois fainéants)'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얻게 됩니다. 쇠퇴의 시작은 다고베르 왕의 후계자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639년 그가 사망하자 왕국은 아들들에게 분할되었는데, 시게베르트 3세는 오스트라시아를, 클로비스 2세는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트를 물려받았습니다. 왕국의 분할은 귀족들에게 권력 찬탈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궁재와 주교 등 프랑크 왕국의 실질적인 관리자로 자리 잡은 이들이 권력을 쥐는 동안, 군주들은 왕권이 무너지는 것을 속수무책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권력도 재산도 없던 이들 '게으른 왕'은 선대 군주들이 쌓아온 영광에 먹칠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기억 속 다고베르 왕의 시대는 황금기로 남았고, 그에게는 '선왕(善王)'이라는 전설적인 칭호가 붙었습니다. 결국 751년, 메로빙거 왕조는 완전히 무너지고 카롤링거 왕조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카롤링거 왕조의 승리
메로빙거 왕의 권력이 기울면서 정치 판도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궁재(宮宰)의 역할은 점차 막강해져 왕립 군대를 지휘하고, 궁정 회의를 주재하며, 제멋대로 세금을 걷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궁재는 모든 권한을 쥔 실질적인 정부 수반으로 변신했습니다. 그리고 이 궁재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 인물이 바로 소왕 피핀(Pepin le Bref)입니다.
본래 야망이 컸던 그는 751년 마지막 메로빙거 왕 힐데리크 3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같은 해 엔 지방 수아송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는데, 이것이 메로빙거에서 카롤링거로 왕조가 교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귀족들 사이에서 왕위의 정당성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754년, 교황 스테파노 2세의 도움으로 생드니에서 다시 대관식을 올리며 상황이 반전됩니다. 교황은 현 왕조 외의 인물을 왕으로 세우는 것을 금지했고, 이로써 피핀은 드디어 카롤링거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카롤링거'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 메로빙거의 이름 유래는 앞서 살펴보았지만, 카롤링거는 라틴어 '카롤루스(Carolus)'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이름은 카롤루스 마르텔(샤를 마르텔)과 그의 손자이자 가장 유명한 카롤링거 왕인 카롤루스 대제, 곧 샤를마뉴를 가리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