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개척 시대 가장 유명한 총잡이의 전설은 수많은 소설과 영화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습니다. '칼라미티 제인'의 기이한 증언은 불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 제시 제임스는 배신에서 살아남았고, 무덤에는 다른 사람이 묻혔다는 것일까요?
"DNA 대부분은 세포핵에 들어 있지만 일부는 미토콘드리아에도 존재합니다. […] 남녀 자손 모두 난자로부터 미토콘드리아 DNA를 물려받지만, 이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여성 자손뿐입니다. 그래서 흔히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여성은 미토콘드리아 DNA를 통해 첫 번째 여성, 이른바 '미토콘드리아 이브'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조셉 르두(Joseph LeDoux)는 저서 『우리 의식의 역사』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서부 개척 시대 가장 악명 높은 강도 중 한 명의 이야기와 무슨 상관일까요?
무(無)에서 (반)영웅까지
제시 제임스는 말 그대로 서부극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이었습니다. 1847년 9월 5일 미주리주에서 태어난 그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 지원 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했습니다. 이미 이때부터 그는 피를 흘리는 일에 거리낌이 없는 성향을 드러냈습니다. 무장 해제된 북군 병사와 민간인을 상대로 한 수많은 폭력 행위에 연루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방어 능력이 없는 북군 지지자 24명이 살해된 센트럴리아 학살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가 형제, 사촌들과 함께 범죄 활동에 뛰어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은행, 마차, 기차를 습격했으며, 1866~67년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역사에 '제임스-영거 갱(James-Younger Gang)'으로 기록된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무자비한 '일' 방식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대중적 인기를 누렸습니다.
갱단이 처음 발목을 잡힌 순간은 미네소타주 노스필드에서 벌어진 실패한 은행 강도 사건이었습니다. 금고 담당 직원이 금고를 열기를 거부했고, 노스필드 주민들은 강도들의 의도를 눈치채고 총구를 겨누면서 갱단원 다수가 사망하거나 체포되었습니다. 살아남아 자유의 몸이 된 것은 제임스 형제뿐이었습니다.
제시는 활동을 계속 이어갔고 새로운 '무법자'들이 합류했지만, 당국의 압박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갱단의 신입 멤버들을 극도로 불신했는데, 심지어 한 명을 '만에 하나'라며 총으로 쏴 죽였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의심은 옳았습니다. 전설적인 강도는 갱단의 새 '영입' 멤버였던 로버트 포드(Robert Ford)의 손에 죽음을 맞습니다. 로버트는 제시 제임스의 목에 걸린 상당한 현상금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제시 제임스의 초상
모든 일은 제임스의 집에서 벌어졌습니다. 포드 형제인 로버트와 찰리는 다가오는 법의 그림자로부터 '두목'을 더 잘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집에 얹혀살고 있었습니다. 제시는 알지 못했지만, 이미 로버트는 미주리주 주지사 토머스 T. 크리텐덴(Thomas T. Crittenden)과 몰래 거래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결정적 순간, 제시가 등을 돌린 사이 로버트는 권총을 꺼내 그의 뒤통수를 쐈습니다.
포드 형제는 무법자 '처형'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집에 도착해 두 사람을 살인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같은 날 재판이 열려 유죄 판결과 교수형 선고를 받았지만, 곧바로 사면되었습니다. 주지사는 그들에게 현상금의 일부를 지급했고(나머지 돈은 보안관과 연방 보안관에게 돌아갔습니다), 형제는 떠났습니다. 찰리 포드는 1884년 5월 6일 자살했고, 로버트는 1892년 6월 8일 에드워드 오킬리(Edward O'Kelley)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무덤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제시 제임스는 가족 소유지에 안장되었고, 나중에 시신은 커니 묘지(Kearney Cemetery)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곳에 정말 그의 시신이 잠들어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신은 과거 총상으로 남은 흉터와 절반 잘린 중지로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소문은 호기심 많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어쩌면 모든 것이 조작된 것 아닐까요? 어쩌면 로버트 포드 — 제시의 믿음직한 동료 — 가 다른 사람을 쐈고, 진짜 무법자는 도주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칼라미티 제인(Calamity Jane)이 일지에 남긴 증언이 불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녀는 제시의 죽음 7년 후에 그를 만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의 버전에 따르면, 관에 묻힌 사람은 국민적 영웅 '와일드 빌' 히콕(Wild Bill Hickok)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제시 제임스는 제인에게 자신이 그녀의 100번째 생일을 함께 보고 나서야 진짜 정체를 밝히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편 신화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1940년대에는 프랭크 달튼(Frank Dalton)이라는 남자가 자신이 제시 제임스라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주장은 보통 소금 한 꼬집으로 여겨지지만, 칼라미티 제인이 옳았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 늘 그렇듯이 — 과학이 모든 의문을 걷어냈습니다(아마도 서부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던 몇몇 열광팬들의 재미를 깎아내면서 말입니다). 조셉 르두는 『우리 의식의 역사』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계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 방식은 19세기 악명 높은 은행 강도 제시 제임스가 실제로 그의 이름이 새겨진 무덤에 묻혀 있음을 입증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강도가 다른 이름으로 법망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위장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덤에서 발굴한 머리카락과 치아의 DNA를, 제임스의 여동생 수잔(Susan)의 후손인 두 명의 생존 남성[…]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비교한 결과[…] 마침내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같은 방식은 전쟁에서 신원 미상 군인의 유해를 확인하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제시 제임스는 실제로 그 총격에서 '살아남아' 불멸을 확보했습니다 — 소설의 페이지와 영화 스크린 위에서 말입니다…
참고 문헌
- LeDoux, J., 『우리 의식의 역사(The History of Our Consciousness)』, Copernicus Center Press, 2020.
- Settle, W. A., 『Jesse James Was His Name, or, Fact and Fiction Concerning the Careers of the Notorious James Brothers of Missouri』,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1977.
- Stiles, T. J., 『Jesse James: Last Rebel of the Civil War』, Knopf Publishing,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