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시대마다 사회를 강타하고 수많은 죽음과 함께 깊은 흔적을 남긴 질병들의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여러 질병의 확산은 중대한 변화의 촉매제가 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고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과학 발전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천연두, 홍역, 티푸스, 장티푸스, 황열병, 콜레라, 에이즈, 에볼라, 흑사병,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독감 등 인류 사회의 발전 과정에 굵직한 흔적을 남긴 질병들은 무궁무진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인류를 잔혹하게 덮쳤던(그리고 지금도 덮치고 있는) 다섯 가지 질병을 살펴보겠습니다.
천연두

천연두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병으로, 환자의 피부에 작은 병변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질병은 감염된 사람의 분비물을 통해 전파되며, 물건을 함께 사용하거나 환자 피부에 생긴 딱지와 접촉하는 경우에도 전염될 수 있습니다.
천연두는 대유행을 일으킨 질병 중 하나로, 서기 2세기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산된 팬데믹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질병은 고대 인도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그곳마다 막대한 피해를 남겼습니다.
첫 번째 사례로 앞서 언급한 165년부터 시작된 로마 제국의 팬데믹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유행병은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로마 영토 파르티아에 주둔하던 로마군에서 시작되었고, 이 부대들을 통해 로마 영토로 퍼져나가 166년에는 로마에 도달했습니다.
이 유행병은 '안토니누스 역병'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189년의 기록에 따르면 로마에서 하루 약 2천 명이 사망하는 참극을 낳았습니다|1|. 당시 그리스 의사가 남긴 기록의 증상이 천연두의 증상과 일치하기 때문에 천연두의 발생으로 추정됩니다. 안토니누스 역병으로 인해 약 5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두 번째 사례는 735년부터 737년 사이 일본에서 발생한 천연두입니다. 8세기 일본의 천연두 유행은 본주(本州) 남쪽에 위치한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규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에서 돌아오던 일본 원정대가 규슈에서 본주로 질병을 옮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일본 인구의 3분의 1이 이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됩니다|2|.
북대서양에 위치한 섬나라 아이슬란드 역시 천연두 유행병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707년부터 1709년 사이에 발생한 이 유행병은 아이슬란드 인구의 25%를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3|. 덴마크 여행에서 돌아오던 도중 이 병으로 사망한 한 아이슬란드인의 소지품을 통해 질병이 아이슬란드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브라질에서 이 질병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563년으로, 이따파리카 섬에서 유행병이 발생하여 살바도르까지 번졌던 때입니다. 천연두는 원주민들 사이에서 매우 높은 치사율을 보였으며, 브라질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전역의 원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안겼습니다.
흑사병(페스트)
흑사병은 쥐에게 서식하는 박테리아 Yersinia pestis(예르시니아 페스티스)에 의해 발생하며, 감염된 동물에 붙어 있던 벼룩이 사람의 피부를 물 때 사람에게 전염됩니다. 일단 사람이 이 병에 걸리면 자신의 분비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습니다.
흑사병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4세기 유럽, 북아프리카, 아시아 일부를 강타한 팬데믹입니다.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이 질병이 '흑사병(Black Death)'이라 불렸으며, 1347년부터 1353년 사이 약 5천만 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흑사병의 규모는 중세 유럽에 심오한 변혁을 가져온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이 질병은 중앙아시아 어딘가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며, 14세기의 팬데믹이 흑사병 발생의 첫 사례는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 '사무엘서'에는 쥐가 옮긴 병이 블레셋 사람들을 휩쓸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문가들은 이것이 흑사병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541년부터 544년 사이에는 비잔틴 제국에서 흑사병이 발생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으로 알려진 이 페스트는 나일 삼각주 지역에서 발생하여 541년부터 비잔틴 영토 전역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유행의 정점기에 하루 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4|.
14세기에 이 질병은 크림반도의 제노바 식민지 카파에서 도망쳐 나온 제노바 상인들에 의해 유럽 대륙으로 다시 유입되었습니다. 당시 카파는 페스트 발생으로 이미 초토화된 타타르군에게 포위당한 상태였고, 도시는 오염되었으며 제노바인들은 이 병을 시칠리아, 마르세유, 제노바 등지로 옮겼습니다. 이후 육로를 통해 유럽 대륙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흑사병은 유럽의 사회·정치·경제 전반에 걸쳐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농노제의 유대관계가 약화되고 임금이 상승했으며 상업 구조가 변화했습니다. 통치자의 부재 속에 도시들은 혼란 속에서 붕괴했습니다. 대중의 상상력 속에서는 인간의 연약함과 죽음의 승리라는 개념이 자리 잡았고, 이러한 이미지는 '죽음의 춤'으로 알려진 일련의 예술적 표현을 탄생시켰습니다.
그 후 몇 세기 동안에도 유럽에서는 흑사병 발생이 계속되었습니다. 영국의 수도 런던은 1665년부터 1666년 사이에 유행병을 겪었으며, 총 42만 명의 인구 중 최대 1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됩니다|5|. 또 다른 사례는 마르세유로, 1720년 시리아발 선박이 프랑스에 페스트를 옮기면서 9만 명의 인구 중 4만 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6|.
스페인 독감

스페인 독감은 1918년에 출현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종으로 불리며, 1919년 중반까지 엄청난 피해를 일으켰습니다. 이 질병은 기침, 콧물, 발열, 두통 등 일반 감기와 동일한 증상을 보였으며, 심한 경우 각종 폐렴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졌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질병이 정확히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특정하지 못하지만, 미국에서 발생하여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으로 파견된 미군 부대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고 추정합니다. 이 질병은 세 차례의 파동으로 유행했으며, 두 번째 파동이 가장 전염성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았습니다.
이 질병은 전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교전국들은 전투 병력의 사기를 저하시키지 않기 위해 부대 내 확산 소식을 은폐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군에서만 1918년 6월에 50만 명의 병사가 이 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7|. 이 질병은 프랑스군 등 독일의 적군 부대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질병이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스페인 언론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은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국가였기 때문에 스페인 기자들이 이 질병 소식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의학은 바이러스를 관찰할 기술이 부족하여 이 질병의 원인을 알지 못했습니다. 치료는 증상을 완화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졌으며, 20세기 초에는 항생제가 없었기 때문에 합병증으로 인한 감염을 제대로 막을 수 없었습니다.
브라질에는 1918년 9월, 두 번째 파동 시기에 이 질병이 유입되어 전국 모든 지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당시 국내 최대 도시였던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였습니다. 스페인 독감으로 공식적으로 3만 5천 명의 브라질인이 사망했으며, 그중에는 1918년 대통령 선거의 승자였던 호드리게스 아우베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 독감은 최소 5천만 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에이즈(AIDS)
1981년부터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희귀 질환 사례의 증가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전까지 건강했던 많은 남성들이 폐렴과 암에 걸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의학 연구는 곧 이 환자들의 면역체계가 심각하게 약화되어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이 사례들의 배후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진행된 연구 끝에, 1982년 이 질환은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이 질병의 원인이 인면역결핍바이러스(HIV)임이 밝혀졌습니다.
1980년대는 오늘날 팬데믹으로 간주되는 사태의 시작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에이즈 환자는 미국과 전 세계에서 급증했으며, 2018년까지 7천 5백만 명이 이 질병에 감염되었습니다. 이 중 약 3천 2백만 명이 사망했습니다|8|. 브라질에서는 약 90만 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에이즈는 혈액과 정액 같은 체액을 통해 전염됩니다. 따라서 주사기 공유, 수혈, 무방비 성접촉, 그리고 HIV에 감염된 임산부가 태아에게 질병을 넘기는 산모-태아 감염 등을 통해 전파될 수 있습니다.
에볼라
최근에 발견되어 발현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질병이 에볼라입니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이 질병은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두 나라, 즉 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처음 확인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다른 동물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박쥐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감염된 동물의 시신을 처리할 때 이 병에 걸립니다. 이후 타액, 땀, 모유, 혈액 등의 체액을 통해 사람 간 전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전염성이 매우 높은 질병이며, 아프리카 대륙에서 이미 여러 차례 심각한 유행병을 일으켰습니다.

가장 심각한 사례는 2013년부터 2016년 사이 서아프리카 지역, 특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기니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유행병에서 거의 2만 9천 명이 감염되었고, 그중 1만 1천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현재도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사망자가 2천 2백 명을 넘어선 유행병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에볼라는 고열, 전신 통증, 구토, 출혈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중증 질환으로 간주됩니다. 아직 치료법과 완치법이 없으며 치사율이 높은 질병입니다. 의사들은 회복한 환자에게 남는 심각한 후유증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그중에는 관절 통증, 시력 및 청력 문제 등이 포함됩니다.
참고 문헌
|1| HAYS, J. N. Epidemics and pandemics: Their impacts on human history. Austin, Texas: Kahle Foundation, 2005. p. 18.
|2| 상동, p. 31.
|3| 상동, p. 131.
|4| 상동, p. 23.
|5| 상동, p. 119.
|6| 상동, p. 137.
|7| 상동, p. 386.
|8| Unaids Brazil 통계 자료.
이미지 출처
[1] Sergey Uryadnikov /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