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석 문화는 기원전 1000년경 인도 남부에서 나타나 수 세기에 걸쳐 이 지역에 지속되었다. 이 문화의 사람들은 죽은 자를 무덤에 안장하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돌을 사용했는데, '거석(megalith)'이라는 명칭이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이들의 매장 유적 발굴에서는 철제 도구와 무기가 풍부하게 출토된다.
거석 문화의 성립과 연대
거석 문화는 기원전 1000년경 남인도에서 발생하여 여러 세기 동안 존속했다. 거석묘를 만드는 전통은 남인도에서 철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함께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브라마기리(Brahmagiri)에서 조사된 거석묘의 연대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사이로 추정된다. 이처럼 이 문화의 정확한 연대기는 아직도 학계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거석 문화의 주요 분포 지역
남인도
마하라슈트라주 나그푸르 근교, 카르나타카주 마스키(Maski), 안드라프라데시주 나가르주나콘다(Nagarjunakonda), 타밀나두와 케랄라의 아디찰루르(Adichanallur) 등지에서 이러한 무덤들이 발견되었다. 거석묘의 축조 방식은 정착지 계획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농경과 목축 활동은 전통적인 방식대로 계속 이어졌다. 옛 마드라스 관구 티네벨리(Tinnevelly) 지방의 아디찰루르라는 곳에서는 일부 항아리(우르니)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항아리에는 무기, 도구, 장신구 및 기타 물건들이 함께 넣어졌다. 타밀 문헌에도 이런 항아리 매장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거석묘는 브라마기리, 코임바투르 지방의 술룰(Sullur), 퐁디셰리의 아리카메두(Arikamedu)에서도 확인되었다.
북인도
이러한 형태의 매장은 우타르프라데시주 반다(Banda)와 미르자푸르(Mirzapur) 지방에서도 나타난다. 북부 구자라트의 다라푸르(Darapur)에서는 고대 차이티야(chaitya)로 추정되는 거석 구조물이 발견되었다. 19세기 중반 카라치 지방의 행정관이었던 프레디 대위는 산악 지대 전역에 걸쳐 서쪽 국경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석조 무덤이 있다고 기록했다. 이 무덤들은 출입문이 없다는 점만 빼면 다른 면에서 남인도의 무덤들과 흡사하다.
1871년부터 1873년 사이 칼라일(Carlyle)은 동부 라자스탄을 두 차례 방문했다. 그는 파테푸르시크리(Fatehpur Sikri) 근처에 여러 상고라(Sangora) 무덤이 존재한다고 언급했으나, 이들은 엄밀한 의미의 거석묘는 아니었다. 이들은 돌을 직사각형으로 쌓아 올리고 그 안에 작은 석실을 만든 형태로, 지붕 역시 돌로 덮여 있었다. 대부분의 상고라 무덤은 재와 화석화된 뼈로 채워져 있었다.
칼라일은 데바사(Devasa)에서도 거석군을 관찰했다. 또한 카슈미르의 부르자마(Burzhama)라는 곳에서도 다섯 개의 거석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기원전 400년에서 기원전 300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거석묘의 축조 방식
거석묘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때로는 죽은 자의 뼈를 큰 항아리에 넣어 구덩이에 안치하고, 그 위를 돌로 덮거나 돌만으로 덮었다. 두 방법을 함께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항아리와 구덩이에는 부장품이 함께 들어갔다. 어떤 시신은 구운 점토로 만든 관에 안치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화장한 유해를 돌로 처리하기도 했으며, 시신이 화강암 판석으로 만든 관 모양의 시설에 묻히기도 했다. 인도에서 발견된 거석묘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거석묘의 유형
(1) 상고라 원(石圈)
여러 개의 둥근 돌을 둘러 세워 만든 무덤이다. 상고라 원을 보면 당시 시신이 철제 도구, 토기 또는 항아리와 함께 가축의 재와 묻혔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무덤 주위에 둥근 돌들을 박아 세웠다. 이러한 상고라 원은 나야쿤 보르가온(Nayakund Borgaon, 마하라슈트라)과 칭글펫(Chinglepet, 타밀나두)에서 발견된다.
(2) 석관(돌널)
이 역시 하나의 장례 방식이다. 먼저 시신을 매장한 뒤 사방을 작은 석주로 둘러싸고, 그 위에 큰 돌판을 올려 마치 그늘집(차트라) 같은 형태를 만들었다. 이러한 무덤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반다와 미르자푸르 지방에서 발견된다.
(3) 선돌(멘히르)
이러한 무덤에서는 시신 위에 큰 기둥 모양의 기념석을 세워 무덤의 위치를 표시했다. 이 석주의 길이는 1.5m에서 5.5m에 이른다. 카르나타카의 마스키와 굴바르가(Gulbarga) 지역에서 이런 무덤이 발견되었다.
(4) 탁자형 거석묘
이런 무덤을 만들 때는 먼저 석판으로 둘러싸인 단(壇) 같은 공간의 돌판 위에 시신을 안치했다. 그다음 시신 네 모서리에 세운 기둥 위에 또 다른 돌판을 얹었다. 이 구조가 마치 탁자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무덤을 '톰브(tomb)', 즉 '돌탁자'라고 부른다. 이러한 무덤은 카르나타카의 브라마기리와 타밀나두의 칭글펫 일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5) 기타 무덤
위의 네 가지 유형 외에도 인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의 매장이 발견되었다. 빌찬드라 판데이(Vimalchandra Pandey) 박사는 거석묘를 여덟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 (1) 석관묘(Cyst), (2) 구덩이 원(Pit Circle), (3) 돌무지 원(Cairn Circle), (4) 돌멘(Dolmen), (5) 우산돌(Umbrella Stone), (6) 후드돌(Hood Stone), (7) 칸다라얀(Kandarayan), (8) 모히르(Mohir).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이 무덤들에서 나온 유물은 당시 북서인도와 남인도에서 사용된 것들과 통하는 면이 있다. 특수한 형태의 그릇도 발견되었다. 이 무덤들에서 나온 '다리 달린 잔(cup on legs)'은 인도 북서부 지역과 이란의 같은 시대, 심지어 더 오래된 무덤에서 나온 것과 완전히 같은 형태다. 말 뼈와 말 관련 유물의 출토는 승마 문화권 사람들이 이 지역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나그푸르 근교 주나파니(Junapani)에서 말 매장의 사례가 확인되었다. 이 거석 문화의 사례들은 토착 전통과 외래 전통·장례 관습이 혼합된 양상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철기로서의 거석 문명
거석기 시대 유적에서는 비슷한 철제품들이 발견되는데, 비드르바(Vidarbha)의 나그푸르 근교 주나파니에서부터 약 1500km 남쪽의 아디차날루르까지 폭넓게 분포한다. 납작한 철 도끼, 손잡이가 달린 철기, 삽, 괭이, 곡괭이, 집게, 검, 창, 칼, 끌, 삼족솥, 받침대, 접시, 등잔, 꼬치, 화살촉과 창촉, 삼지창 등 다양한 종류의 철제품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도구들 외에도 몇 가지 특수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예컨대 말 장구류 중 굴레에서 말 입에 물리는 철제 부분, 코에 씌우는 형태의 장치, 입에 대는 막대기 등이 있다. 그 밖의 금속 유물 중에서는 가축 목에 매던 구리·청동 종이 가장 많이 나왔다. 이 문화의 사람들은 흑색과 적색의 토기를 사용했다.
남인도 거석 문명에서 회색 토기 전통과 함께 출토된 철제 도구를 살펴보면, 이 문명의 사람들이 철기를 비교적 제한적인 용도로만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