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는 신비로움과 풍부한 유산으로 우리를 매료시킵니다. 이 문명의 사람들은 죽음 이후 육체가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으며,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사후 세계를 준비하며 살아갔습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이 수천 년에 걸쳐 완성된 정교한 미라 제작 기술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과연 미라는 어떻게, 그리고 왜 만들어졌을까요?
죽은 자의 몸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이집트에서는 아주 초기부터 사람이 죽으면 영원한 땅에서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죽은 자의 육체가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고대 이집트인들은 뇌는 죽음 이후 전혀 쓸모없는 기관이라고 여겼습니다. 반면 심장은 영혼과 지혜가 깃드는 곳으로 간주하여 신중하게 보존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관념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라 제작 방식을 결정짓게 됩니다.
이런 믿음 때문에 고대 이집트인들은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하는 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미라 제작(Mummification)의 역사
사막에 묻힌 시신이 썩지 않고 자연스럽게 건조된다는 사실을 관찰한 것이 시신 보존법 발전의 출발점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모래 속에서 말라붙은 시신을 발견하고 "저 시신이 모래에서 말라버렸구나!"라고 깨달았던 것이겠지요.
미라 제작은 이미 제2왕조(기원전 약 2800년경)에 등장하여 왕족의 장례 의식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진정한 미라'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은 약 200년 후, 제4왕조 때의 일이었습니다.
중왕국 시대(기원전 약 2050~1710년)에 이르러 미라 제작은 점차 대중화되기 시작해 더 넓은 계층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아직 기술이 완성되지 않아 해당 시대의 미라들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방부 기술은 계속 발전했고, 결국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의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데 완벽에 가까운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신에게서 시작된 미라 제작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미라 제작의 발명자는 저승의 신 아누비스(Anubis)였습니다. 그는 최초로 죽은 오시리스(Osiris) 신의 시신을 방부 처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전통은 이집트인들의 의식에 깊이 뿌리내려, 실제 미라 제작 과정 내내 사제 중 한 명이 자칼 가면을 쓰고 아누비스를 연기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미라 제작 과정에 대한 정보는 주로 그리스 문헌에서 얻습니다. 헤로도토스(Herodotus), 디오도루스(Diodorus), 플루타르코스(Plutarch), 포르피리오스(Porphyry) 등의 기록이 큰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더해 람세스 2세(Ramesses II)의 미라 연구, 그리고 1986년 과학자들이 수행한 후기 시대 익명 미라 분석 등 현대 학술 연구가 우리의 지식을 보완해 주었습니다.
미라 제작 과정에서 내장은 꺼내어 카노푸스 단지(canopic jars)에 보관되었습니다.
미라 제작 과정, 단계별로 살펴보기
그렇다면 올바르게 미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거쳐야 했을까요?
- 정결의 집으로 옮기기: 먼저 죽은 자를 '정결의 집(house of cleansing)'이라 불리는 특별한 시설로 옮겼습니다.
- 뇌 제거: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철제 갈고리를 콧구멍으로 넣어 뇌를 잘게 부순 뒤 꺼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 연구에 따르면 두개골에 막대기를 넣고 중력을 이용해 뇌를 배출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합니다.
- 내장 적출: 부싯돌 칼로 시신의 오른쪽 옆구리에 절개를 내고, 횡격막을 절개한 후 모든 장기를 꺼냈습니다. 내장은 별도로 방부 처리한 뒤 네 개의 카노푸스 단지에 나누어 보관했습니다. 몸에는 심장과 신장만 남겨두었습니다.
- 나트론 소금에 절이기: 이 작업은 '타리케우타스(taricheutes)'라고 불리는 전문 방부 처리사가 담당했습니다. 시신은 나트론(natron)이라는 천연 소금에 약 35일간 묻혀 건조되었습니다. 피부가 검게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성에게는 붉은색, 여성에게는 노란색의 헤나나 황토를 발랐습니다. 복강에는 아마포 솜, 모래, 톱밥 또는 붕대를 채워 넣었고, 호루스의 네 아들에게 바치는 비석 판을 절개 부위에 놓았습니다.
- 세척과 붕대 감기: 이후 시신은 palm wine과 뿌리 추출물로 씻겨 정결하게 되는데, 첫 번째 덮개층은 보통 수의(surplice)였으며, 그 후 붕대로 감았습니다. 이 단계는 엄격히 정해진 의식에 따라 여러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며칠에 걸쳐 시신에 천을 덮고 사지를 아마포 붕대로 각각 감았으므로 손가락이나 남근도 따로 붕대를 감았습니다. 다음 단계에서 전신을 통째로 감쌌습니다. 붕대 사이사이에는 부적, 보석 또는 장미 꽃잎을 넣었습니다. 신왕국 시대부터는 추가로 성스러운 경전을 함께 넣었는데, 예를 들어 죽은 자의 다리 사이에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를 넣은 경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죽음의 가면 씌우기: 마지막으로 죽은 자의 얼굴에 죽음의 가면(death mask)을 씌웠습니다. 이 가면은 시대가 지나며 점차 발전해, 훗날에는 시신 전체를 덮는 일종의 관 형태로 변모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 제작 전체 과정은 약 70일이 걸렸습니다.
사후 세계, 충분한 물품 없이는 갈 수 없다!
죽은 자의 육체가 무사히 보존되었다면, 이제 사후 세계에 필요한 물품들을 갖춰주어야 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저 세상에서도 지상과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평화롭고 풍요로운 내세 생활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무덤에 넣어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무덤과 부장품에서 수많은 일상용품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왕조 시대부터 이미 죽은 자들은 소박한 장신구, 그릇, 립스틱 받침대 등과 함께 묻혔습니다. 죽은 자에게는 음식과 음료도 필요했습니다. 내세에서 음식이 없는 것은 최악의 운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배설물을 먹고 오줌을 마셔야 한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래서 일반 가족들도 유족들에게 음식, 음료, 향, 심지어 옷까지 가져다 바치며 내세에서 유용하게 쓰이길 빌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죽음의 가면은 단연코 투탕카멘(Tutankhamun)의 미라 머리를 덮고 있던 황금 가면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이 문제에서 놀랄 만큼 신중하고 철저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무덤 안 잘 보이는 곳에 오시리스에게 바치는 기원문(invocation to Osiris)을 새겨 두었습니다. 이것을 소리 내어 읽으면 언어의 마력이 발현되어, 신이 죽은 자가 내세에서 필요로 할 모든 물품을 구현해 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방부 처리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육체를 보존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워낙 절실해서, 방부 처리 과정 자체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붕대의 품질, 부적과 죽음의 가면의 화려함, 그리고 부장품의 종류와 양만이 누가 더 중요하고 부유한 인물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기준이었습니다.
무덤에서 발견된 미라들은 언제나 세계에 매혹과 동시에 약간의 불안감을 안겨왔습니다. 이집트인들이 방부 기술을 그토록 완벽하게 발전시켰기에, 마치 죽은 자가 곧 일어나 자신의 평온을 방해한 당신을 공격할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그래서 이런 소재를 다룬 수많은 문화 콘텐츠가 탄생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겠지요.
참고 문헌
- N. Grimal, 『고대 이집트사(The History of Ancient Egypt)』, 바르샤바 2004.
- J. Lipińska, M. Marciniak, 『고대 이집트 신화(The Mythology of Ancient Egypt)』, 바르샤바 2002.
- I. Shaw (편), 『옥스퍼드 고대 이집트사(The Oxford History of Ancient Egypt)』, 옥스퍼드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