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훗날 알게 된 사실인데, 게임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초대 주인공의 이름이 마르스(Mars)였습니다. 이 이름은 다름 아닌 전쟁의 신 마르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같은 신이지만 그리스에서는 '아레스', 로마에서는 '마르스'로 불립니다. 로마식 이름 '마르쿠스(Marcus)'가 마르스에서 유래했으며, 로마의 초대 왕 로물루스가 마르스의 아들이라는 전승도 남아 있습니다.
행성 '화성(Mars)'의 영어 명칭 역시 마르스에서 왔고, 3월을 뜻하는 '마치(March)'라는 단어도 마르스와 연결됩니다. 또한 아레스에게는 '그라디우스(Gradius)'라는 별칭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각종 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라디우스'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게임 제목 정도로 생각했던 저로서는 꽤 의외였습니다.
제우스와 헤라 사이의 적자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 제우스는 여자 앞에서는 눈이 먼 신입니다. 바람을 피울 때마다 아내 헤라의 진노를 불러일었죠. 그래서 그리스 신화의 대부분 영웅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생길이 열립니다. 헤라의 분노는 제우스가 아니라 그의 연인들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향하기 때문입니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조차 탄생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고, 헤라클레스는 갓 태어나자마자 독사에게 물려 죽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아레스는 예외였습니다. 그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적법한 아들, 즉 적자였기 때문에 이런 박해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아레스에 관한 일화가 드물고, 헤라클레스나 아폴론만큼 인기 있는 신이 되지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스에서 외면받은 전쟁의 신
아레스는 전쟁의 폭력적이고 난폭한 면모를 상징하는 신으로,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특별히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필멸의 인간에게 패배를 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고, 영웅 헤라클레스에게도 패했습니다. 결혼까지 한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와 불륜을 저질러 남편 헤파이스토스에게 들키는 해프닝도 유명하지만, 솔직히 그리스 신화에서 아레스의 깔끔하고 좋은 일화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야만적인 이미지 탓에 여성 전사 종족인 아마존족의 조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형제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태양신', '달의 여신' 같은 화려한 칭호를 가진 반면 아레스에게는 '싸움의 신'이라는 이름뿐이니, 어머니 헤라조차 그를 크게 아끼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옵니다.
수호의 신 아테나, 침략의 신 아레스
참고로 아테나 역시 전쟁의 신입니다. 하지만 둘의 성격은 정반대입니다. 아테나가 도시를 지키는 방어와 전략의 신이라면, 아레스는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공격과 살육의 신입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보듯 그리스인들은 방어에 열정적이었을 뿐 타국을 침략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아레스가 인기를 얻기 어려웠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리스 북방의 마케도니아에서는 아레스가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을 배출한 나라답게 정복과 침략을 추구하던 마케도니아는 아레스와 잘 맞았던 것이죠. 반대로 마케도니아에서는 아폴론이 오히려 경시되었다고도 전해집니다.
로마의 수호신, 마르스
반면 마르스는 로마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훗날 세계 제국을 건설하게 될 로마인의 호전적인 기질과 마르스의 성격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르쿠스'와 '마리우스' 같은 이름이 모두 마르스에서 유래했으며, 두 이름은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일본 아이돌 그룹 섹시존(Sexy Zone) 출신 마리우스의 이름 역시 마르스에서 따온 것입니다.
남성을 상징하는 기호 '♂'도 원래 마르스를 나타내던 문양입니다. 같은 신이 그리스와 로마에서 이토록 극명하게 다른 대접을 받은 사례는 드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