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먼지와 악취 속의 순결: 성 히에로니무스가 여성에게 전한 극단적 금욕 조언

물은 사람을 물지 않고, 비누는 손과 귀, 목을 깨끗이 씻어준다! 모든 유치원생이 알고 있는 교훈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시대정신에 맞는 위생 수칙을 가르침받아 왔다. 하지만 만약 4세기의 대금욕가 성 히에로니무스(St. Jerome)가 이러한 위생 교육을 들었다면, 아마 심장 발작을 일으켰을 것이다.

기독교인들과 기독교가 정숙(chastity)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가라는 주제는 한 권의 책으로 다루기에 방대하며, 실제로 그런 책이 이미 여러 권 나왔다. 오늘은 그중 단 한 인물, 즉 뛰어난 금욕가이자 성인(聖人)으로 공경받으면서도 동시에 깨끗한 손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던 남자의 관점만을 살펴보려 한다.

성 히에로니무스(약 340~420)는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상당히 독특한 견해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 자신이 검소한 삶을 살았기에, 모든 기독교인, 특히 여성들에게도 같은 태도를 권했다. 그의 여성관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자는 더러운 몸으로 걸어야 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망쳐야 하며, 되도록이면 처녀로 죽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었다.

성 히에로니무스가 말하는 '건강한' 삶이란?

오늘날 이런 주장은 상당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당시에 성 히에로니무스만이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베들레헴 수도원의 원장이었던 그의 친구 파울라(Paula) 역시 같은 견해를 공유했다. 파울라는 선한 어머니답게 수녀들에게 이렇게 일렀다. "깨끗한 몸과 옷은 불결한 영혼을 감춘다." 자, 이제 다시 우리의 성인에게로 돌아가 보자.

21세기의 여성들은 자신을 가꾸며 '건강(fit)'해지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많은 이들이 채식주의자가 되거나 일시적으로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전환한다. 또한 젊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찬물 목욕을 하고 술을 멀리하기도 한다. 히에로니무스라면 이들을 자랑스럽게 여겼을까? 물론...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처녀성 문제부터 짚어보자. 저명한 금욕가였던 그는 처녀성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그는 처녀성을 최대한 오래 지키는 것이 최선이며, 육체적 사랑에 물들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여성에게 가장 큰 행복이라 믿었다. 처녀성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여성은 어린 나이부터 평온하게 살아야 하고, 강한 자극을 피하며 담백한 식단(채소나 허브 등)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술 = 섹스', '뜨거운 목욕 = 섹스'라는 두 가지 등식을 인정했다. 과연 과장이 아닐까?

먼지와 악취 속의 순결: 성 히에로니무스가 여성에게 전한 극단적 금욕 조언

성 히에로니무스와 파울라.

더러움, 처녀성, 금주…

어쨌든 술과 뜨거운 목욕은 처녀에게 완전히 권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술은 피를 데워 흐름을 빠르게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성관계로 이어진다고 여겼다. 뜨거운 목욕은... 음... 성 히에로니무스에 따르면 덕 있는 여성은 "제 의지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스스로 망치려 한다"고 했다. 게다가 그런 열성적인 여성은 목욕, 특히 뜨거운 목욕을 피해야 한다. 열기가 젊은이의 몸에 대한 죄악적인 관심을 일깨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씻어야 하는가? 히에로니무스는 세례가 인생에서 필요한 유일한 목욕이라고 믿는 학자 집단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만약 여성이 — 하나님 금하시길! — 씻었다면, 적어도 그 결과를 누구에게도 보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너희에게 간청한다. (...) 오직 사제만이 볼 수 있는 성전의 그릇들을 내보이지 말라. 아무도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라. 함부로 언궤를 만졌다가 웃사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금과 은 그릇은 하나님께 처녀의 육체라는 성전만큼 소중하지 않았다."

성인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아마 만지는 것뿐 아니라 보는 것까지 포함하려 한 듯싶다.

먼지와 악취 속의 순결: 성 히에로니무스가 여성에게 전한 극단적 금욕 조언

성 히에로니무스의 장례식. 아니, 로마인들이 블라에실라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그를 죽인 것은 아니다.

덧붙이자면, 히에로니무스는 그 견해의 엄격함 때문에 동시대인들마저 경악시켰다. 로마에서 가르치는 동안 그는 유력한 귀족·원로원 계급 출신의 딸, 블라에실라(Blaesilla)를 설득해 자신의 생활 방식을 따르게 했다. 참고로 그녀는 앞서 언급한 파울라의 딸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소녀가 불과 넉 달 후 사망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순조로웠을 것이다. 분노한 로마 시민들은 히에로니무스에게 해명을 요구했지만, 그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딸을 애도하는 파울라를 비난했다. 영원한 도시 로마 주민들의 압박 속에 금욕가는 서둘러 떠나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유대인에 관하여

먼지와 악취 속의 순결: 성 히에로니무스가 여성에게 전한 극단적 금욕 조언

이 글은 K. 애슌버그(K. Ashenburg)의 『더러움의 역사(The History of Dirt)』 등을 참고해 작성되었다.

물론 논란의 금욕가는 여성의 육체적·영적 청결에 대해서만 독특한 견해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과 함께 기독교의 '더러움에 대한 집착'을 개척한 인물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중세 유럽 문화에 널리 퍼진 반유대주의의 지지자이기도 했다. 이 교부는 이렇게 썼다. "유대 회당을 매음굴, 악덕의 굴혹 [혹은] 악마의 피난처라고 부른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가 히브리어를 개종한 유대인에게 배웠다는 사실이야말로 실로 아이러니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