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요금이 너무 비싸다고 불평해 본 적 있나요?
휴대폰 통화료가 부담스러워 불평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2010년대 초만 해도 휴대폰 한 통화에 몇천 원씩 지불해야 했던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흥미롭게도 1920년대의 유선전화는 20세기와 21세기가 교차하던 시점의 휴대폰처럼 최신 유행의 신기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격은 놀랍도록 저렴했습니다.
4년 만에 12배로 늘어난 바르샤바의 전화 가입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바르샤바의 전화 가입자는 고작 2,50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단 4년 만에 그 수는 31,000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바르샤바의 전화번호부는 해가 갈수록 두꺼워져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는 거의 600쪽에 이르렀습니다. 전화가 대성공을 거둔 데에는 무엇보다 합리적인 가격이 한몫했습니다. 사실상 누구나 자신만의 전화기를 설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 사용자들 역시 요금이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곤 했지만, 오늘날 돌아보면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1920년대 말 기준 표준 전화 월 구독료는 도시에 따라 10~12즐로티였고, 이 요금으로 한 달에 75통의 전화를 걸 수 있었습니다.

통화 시간 제한 없이 마음껏 대화
1930년대 말에는 구독료 안에서 75통의 전화를 걸 수 있었고, 통화 시간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환원들은 늘 손이 모자랐습니다.
오늘날처럼 통화 시간(분)이 아니라 연결 횟수가 제한되었습니다. 일단 연결에 성공하면 원하는 만큼 오래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10즐로티는 오늘 가치로 약 100즐로티에 해당합니다. 한 통의 통화가 평균 4~5분 정도였다고 가정하면, 놀랍게도 당시의 전화 요금이 오늘날보다 오히려 저렴했던 셈입니다. 기술적으로 뒤떨어진 나라에서 전화가 아직 신선한 기술이던 시절에도 말입니다.
긴 통화 애호가를 위한 프리미엄 요금제
바르샤바에서는 폴란드 주식회사 전화공사(Polska Akcyjna Spółka Telefoniczna, 오늘날 텝사(TPSA)의 전신)가 더 비싼 두 번째 요금제도 함께 판매했습니다. 당시 18즐로티(오늘 가치로 약 180즐로티)를 지불하면 한 달에 200통의 연결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길고 긴 통화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오늘날 휴대폰 사용자보다 훨씬 나은 조건에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월간 통화 한도를 초과하더라도 특별히 위험한 결과는 없었습니다. 추가 연결 1회당 통화 시간과 관계없이 오늘 가치로 60~70그로시 정도만 내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주의할 점은 있었다
전반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살기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다만 가입자는 언어 사용에 신경 써야 했습니다. 회선에서 욕설을 하면 네트워크에서 강제 해지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화기 관리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번호부에는 번호를 잘못 누르면 전화기는 물론 교환대까지 손상될 수 있다는 경고가 실려 있었죠. 물론 문자 메시지나 인터넷 접속 같은 부가 서비스는 당시 전화망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출처
- Kamil Janicki, Aleksandra Zaprutko, Elites in the Second Polish Republic(제2차 폴란드 공화국의 엘리트), Dragon,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