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부인이 구두쟁이에게 눈짓을 보내고, 왕자가 세탁부와 춤을 추고 있다면? 여러 사람이 각양각색의 가면으로 정체를 숨긴 채 신나게 놀고, 불빛이 화려하게 반짝이는 음악 가득한 방 입구에서 누군가 입장료를 요구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레두트(redout)'라 불리던 가면무도회에 도착한 것이다!
가면무도회, 흔히 '레두트'라고 불리던 이 행사는 아우구스트 2세(강왕) 치세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 처음 열린 공개 가면 놀이였다. 적절한 입장료만 지불하면 출신과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오직 이곳, 변장 뒤에 숨은 춤꾼들 사이에서만 신분의 벽이 사라졌고, 음악과 춤, 술, 도박, 로맨스는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였다.
모든 계층에게 열린 축제! 무도회에 산 사람은 누구?
전임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 시대에는 대규모 무도회와 가면무도회가 사회 최상류층만의 전유물이었다. 소비에스키 가문은 빌라누프 궁전에서 이런 행사를 즐겨 열었는데, 그 자랑은 다름 아닌 왕비 마리시엥카였다. 매일 생계를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평범한 시민들은 권세를 누리던 대귀족들의 성대한 파티를 바라만 볼 수 있었다.

한번 열린 무도회에는 가면을 쓴 백 쌍이 모이기도 했다.
한편 18세기 유럽에서 가면무도회는 특권층의 전유물이라는 위상에서 내려와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락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레두트의 무대 장식은 흔히 고대나 동양을 연상시키는 것들이었다. 처음에는 무도회가 사육제 기간에만 주 2회 열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적인 엔터테인먼트이자 여가를 보내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공개 가면무도회의 참가자 수는 매우 많아 무려 2천~3천 명에 달하기도 했다. 인파 속에서 위험한 사고가 종종 일어났고, 심지어 깔려 다치는 사건까지 있었다고 한다.
구두쟁이도 숙녀들 사이에서 춤을
레두트 참가 자격은 더 이상 사회적 지위로 좌우되지 않았다. 따라서 찾아오는 귀족과 대귀족, 도시 명문가뿐 아니라 평민들도 함께 어울려 놀았다.
아우구스트 3세 치세의 풍습을 기록한 예드제이 키토비치(Jędrzej Kitowicz) 신부는 이렇게 적었다.
"구두쟁이, 재단사, 그리고 다른 어떤 직인이든 가면을 쓰기만 하면 신사들과 함께 신나게 놀았다."
즐거움에 굶주린 사람들은 하룻밤에 여러 개의 무도회를 전전하기도 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입장료를 내야 했기에, 많은 이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집사인지, 당신인지? 둘 다 수도사로 분장했다면 누가 알아볼 수 있겠는가!
입장료를 낸 참가자는 홀 안의 조명과 음악을 사용할 권리를 얻었다. 술 등 다른 유희는 별도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레두트에서는 주로 레몬에이드, 오렌지에이드, 차, 커피가 마셔졌고, 영국 맥주와 외국산 포도주도 인기였다. 키토비치는 이렇게 언급했다.
"국내산 맥주는 레두트에서 유행하지 않았다. 그것을 요구하는 자는 촌부 취급을 받았다."
한편 부유한 지주와 대귀족들의 무리에서는 값비싼 술이 강처럼 흘러넘쳤다. 물론 좋은 술, 대부분 수입산이었다. 나머지 손님들은 질이 떨어지는 술로 만족해야 했다. 입장료조차 감당하기 버거워 레몬에이드는커녕 앞서 말한 국내 맥주 한 잔도 꿈꿀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가면 뒤에 숨은 몸들의 열광
이전 시대에 주로 즐거움의 상징이었던 가면과 변장은 이제 진정한 신비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층민 출신 남자가 제대로 된 복장만 갖추면 그의 신분이나 출신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가장 흔한 복장은 수도사, 마부, 코사크, 악마, 유대인이었다. 여성들은 유대인 여인, 루테니아 농부, 튀르크인, 농촌 여인으로 가장했다. 즉 평민적인 분위기의 의상이 우세했는데, 이런 복장은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준비할 수 있었다. 덕분에 부유한 농부조차 귀족들과 어울려 파티를 벌일 수 있었고, 평소에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을 만끽할 길이 열렸다.
부자들은 변장에 공을 들였고,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연습까지 했다. 결국 가면무도회의 성패는 연기 실력에 달려 있었다.
참가자들은 서로 가면 뒤의 정체를 알아맞히려 애썼다. 이를 위해 목소리를 조절하며 대화를 나누거나, 제스처를 바꿔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곤 했다.
카드 게임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카드 놀이는 재정 상태나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계층에서 유행했으며, 남성 못지않게 여성들도 열정적으로 즐겼다.
처음에는 카드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해외에서 수입해야 했고, 도안을 거울상으로 그린 뒤 한 장씩 손으로 채색했기 때문에 값이 매우 비쌌다.
그러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말기에는 카드가 대중적인 도박 놀이로 자리 잡았고, 판돈은 때때로 터무니없이 높아지기도 했다. 리보니아 출신 한 남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판돈은 기이할 정도로 높아지고, 술기운이 오르면 게임은 믿기 힘들 만큼 격렬해진다."
레두트와 로맨스
술 마시기, 춤추기, 카드 놀이 외에도 레두트 참가자들은 금지된 쾌락을 맛볼 수 있었다.
공개 가면무도회는 호감을 표현하거나 로맨스를 시작하기에 완벽한 자리였다. 가면무도회를 이용해 배우자의 부정(不貞)을 저지르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통 본격적인 놀이가 시작되기 전에 연인들은 서로 어떤 가면을 쓸지 미리 정해 두어, 인파 속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했다.

후드 아래에 숨은 이가 백작부인일까, 아니면 세탁부일까?
레두트 중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연인들에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는 주최 측으로부터 별도의 방 열쇠를 빌려 여인을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붐비는 인파 속에서는 보호자의 눈을 피해 사라지기 쉬웠다. 다만 이런 모험에는 큰 비용이 들었다. 또 하나 인기 있던 로맨스 방식은 마차를 빌리는 것이었다. 키토비치는 이렇게 썼다.
"누군가의 아내나 딸을 한 시간 몰래 빼앗고 싶은 자는 그녀를 레두트에서 슬그머니 데려나갔다(...). 마차에 올라타 어느 집으로든 데려가거나, 마부에게 먼 거리의 거리들을 돌게 명령한 뒤 마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레두트로 돌아와 따로따로, 살짝 시간차를 두고 입장했다."

18세기의 마차. 이동 수단인가, 아니면 바퀴 달린 밀회의 장소인가?
완전히 미친 모험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낯선 가면 뒤의 파트너와 함께하는 취기 어린 밤이다. 상대가 왕자나 대귀족일 수도 있지만, 똑같이 평범한 돼지치기일 수도 있다.
율리안 우르신 님체비치(Julian Ursyn Niemcewicz)에 따르면, 레두트는 실제로 '사치와 방종의 진짜 극장'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단 몇 순간의 쾌락을 경험할 수 있었고, 신비와 음모의 분위기는 육체적 쾌락을 갈망하는 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