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척의 배, 수천 명의 해적, 럼주를 즐기는 수염 난 자들이 "아르!"를 외치며 마을과 도시와 섬을 유린했다. 하지만 이 모든 장면은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해적의 황금기(Golden Age of Piracy)'. 누가 처음 이 용어를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학계와 대중문화에서 이미 백 년 넘게 사용되고 있는 개념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가 교차하던 시절, 역사가 존 피스크(John Fiske)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해적 행위는 17세기와 18세기 초반만큼 큰 규모로 발달한 적이 세계사 어디에도 없었다."
해적이 모든 시대의 골칫거리였음을 생각하면 상당히 강한 주장입니다. 고대 로마 제국조차 해적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착했던 옛날 시절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계몽시대의 문턱에서 해양 약탈이 번성할 조건은 충분히 성숙해 있었다는 점입니다. 1713년 4월 11일, 유럽 열강 간의 대격돌이 막을 내렸습니다. 이른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은 육지뿐 아니라 바다에서도 온갖 무자비한 수단을 동원해 치러진 전쟁이었습니다.

사략선(privateer)이 한 일은 해적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만 법의 보호를 받았을 뿐이죠.
각 진영은 사략선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적국 선박을 습격하고 격침시키며, 무역을 교란하고, 값나가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약탈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중이라면 이들은 이상적인 무력이었습니다. 급료를 한 푼도 지급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약탈을 허락하는 사략 면허장만 발급해주면, 이들은 스스로 약탈물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좌절한 실업자들
문제는 강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 제국에서만 약 6,000명의 사략선원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유일하게 아는 직업을 계속하려는 사람들이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불법으로, 그리고 마주치는 모든 배를 상대로 말입니다. 심지어 같은 나라 국민을 상대로도요.
해적 행위는 주로 본토에서 먼 식민지 해역, 즉 아프리카 연안과 북아메리카 해안에서 벌어졌습니다. 당국이 약하고 부패했으며 종종 완전히 무력했던 곳들이죠. 런던에는 공포가 번졌습니다. 해적이 최소 수천 명에 달한다는 믿음이 상식처럼 퍼졌고, 그들이 곧 감당할 수 없는 거대 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왔습니다.
대담해진 자들
관료들을 공포에 떨게 한 것은 평범한 백성들에게는 희망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당시 아메리카에서 잘 사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대부분의 정착민은 빈손으로 식민지에 건너와 현지에서 빚만 늘어갔습니다. 물론 흑인 노예들의 처지는 더욱 참혹했습니다. 그들은 쉽게 믿었습니다. 해적이 자신들을 억압에서 구해줄 것이라고!
1718년 바하마 총독은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흑인 노예들이 요즘 너무나 대담하고 무모해져서, 이들의 폭동이 해적에게 도망칠 발판을 마련하려는 준비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한편 대륙의 가난한 백인들에게 해적은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완전히 무의식중에 식민지 당국 타도, 그리고 아메리카에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 셈입니다.
안대를 낀 롭빈후드
콜린 우더드(Colin Woodard)는 저서 『해적 공화국(The Republic of Pirates)』에서 해적들이 온 마을과 촌락의 '민중 영웅'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미국 독립의 첫 번째 옹호자가 되었습니다. 비슷한 구상이 엘리트층의 지지를 얻기까지는 수십 년이 더 걸렸습니다.
심지어 해적 추격 임무를 맡은 폐하의 해군 수병들조차 적진에 합류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기회만 닿으면 그들은 해적 편으로 넘어갔습니다. 1718년에는 영국 함선 HMS 피닉스호의 수병 무리가 밤사이 몰래 빠져나가, 새벽이 되기 전에 이미 검은 깃발 아래서 같은 나라 사람들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럼주, 결투, 그리고… 민주주의 확산! 전형적인 해적의 오락거리일까요?
아주 요란한 "아르!"
콜린 우더드는 『해적 공화국』에서 해적들이 빠르게 이뤄낸 성과를 이렇게 전합니다.
"(...) 영국, 프랑스, 스페인을 해외 식민 제국과 해상 무역로로부터 차단하고, 대륙 간 소통을 교란하며, 아메리카와 서인도 제도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향하는 노예 수송을 막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해적들은… 사실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
18세기나 오늘날이나 흔히 믿어지는 것과 달리, 카리브해에는 수천 명의 무법자가 널려 있지 않았습니다. 콜린 우더드는 단언합니다. 제국을 뒤흔든 그 폭풍의 배후에는 단 스무서른 명의 선장과 수백 명의 해적이 있었을 뿐이라고.
'해적의 황금기' 자체도 결코 하나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존 피스크는 1650년부터 1720년까지 거의 70년간 지속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이 기간은 점차 짧아졌습니다. 『해적의 완전한 역사(Piracy: The Complete History)』의 저자 앵거스 콘스텀(Angus Konstam)에 따르면, 권위 있는 전문가 데이비드 코딩글리(David Cordingly)는 이 시기를 1698년부터 1722년까지로 봅니다. 콘스텀 자신은 이를 단 11년, 즉 1714년부터 1725년까지로 줄였습니다.

해적의 황금기는 놀랄 만큼 빠르게 저물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인용된 콜린 우더드의 계산은 꽤나 냉정합니다. 그에게 황금기는 고작 10년, 1715년부터 1725년까지입니다. 가장 유명한 해적 중 한 명인 '블랙 바트' 바솔로뮤 로버츠(Bartholomew Roberts)의 선원들이 체포되어 처형되자, 카드로 쌓은 집이 무너지듯 해적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해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요?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불과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교묘한 수완과 능숙한 선전, 롭빈후드 못지않은 행동 덕분에 세계 최강의 열강들을 무릎 꿇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위업이 역사로 남도록 하는 것입니다.